[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앙갚음과 안갚음

입력 2015-06-2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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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수백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는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사이코패스(psychopath)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전략사무국(OSS:CIA 전신)으로부터 히틀러의 정신분석을 의뢰받은 월터 랑거 박사가 내린 결론이다. 히틀러의 정신분석은 그를 정확히 알아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연합군 지도자들에 의해 진행됐다. 히틀러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무고한 유대인을 대학살하라고 명령한 독재자가 세균, 달빛을 두려워했고, 초조한 순간에는 새끼손가락을 빨았다. 여자와 관계를 가질 때는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자신을 발로 차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사이코패스는 절대악이다. 살인, 강간, 방화 등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전혀 못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 흉기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겉모습만으론 사이코패스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위험하다. 범죄심리학자인 게이오 의과대학의 니시무라 유키(西村由貴) 박사는 사이코패스를 ‘정장 차림의 뱀’이라고 칭했다.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이코패스를 다룬 영화 ‘살인의뢰’를 봤다. ‘살인의 추억’, ‘추격자’ 등 연쇄 살인범을 쫓는 과정을 그린 영화와 달리 살인의뢰는 살인범이 잡히면서 시작된다. 주인공들의 사적 복수가 초점이기 때문이다. 은행원으로 소소한 행복을 꿈꾸던 남자는 아내를 잃은 이후 눈빛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산다. 희생자의 오빠는 직업이 경찰이지만 고심 끝에 법 대신 사적 복수를 택한다. 끔찍하게 희생된 범죄 피해자 가족에게 공권력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영화다. 영화 속 상황이라면 나 역시 앙갚음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진땀이 났다.

‘앙갚음’은 남이 저에게 해를 준 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줌을 뜻한다. “자신의 차량 앞에서 ‘끼어들기’를 했다는 이유로 24km를 뒤따라가 앙갚음한 30대 수입차 운전자가 구속됐다”처럼 보복(報復)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외에 반보(反報) 반보(返報) 보구(報仇) 보수(報讐) 보원(報怨) 복구(復仇) 등의 한자로도 표현할 수 있다. 같은 의미로 ‘앙가풀이’를 쓰는 이가 있는데 ‘앙갚음’만이 표준어다.

‘안갚음’은 앙갚음과 모양새가 비슷하나 뜻은 천양지차다. 받침 하나를 잘못 표기할 경우 전혀 다른 뜻이 되므로 잘 구분해 써야 한다. 순우리말 안갚음은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일을 의미한다. 까마귀는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한다. 까마귀를 효조(孝鳥)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같은 까마귀의 행동이 바로 안갚음으로,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유래다. 마음을 다해 키워준 은혜를 갚는다는 안갚음의 ‘안’은 마음을 의미한다. 이때 ‘안’은 부정의 뜻을 지닌 ‘아니’의 준말과 구별하기 위해 길게 발음한다.

남에게 해를 당했을 때 앙갚음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인류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법전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2008년에 제작된 곽경택 감독의 영화도 있음)라는 보복법 조항이 있는 것을 보면 이 같은 생각은 뿌리가 매우 깊다. 하지만 앙갚음이 이어진다면 결국 모두 불행해질 뿐이다. 인간 삶의 가치는 앙갚음의 대척점에 자리한 안갚음에 있다. 부모를 봉양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대한다면 만사태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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