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가능한 범위’ vs ‘이미 임계치 도달’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지난 1년간 가계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부동산의 담보 가치를 앞세워 아직까지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대출자의 약 70%가 고소득층에 집중돼 있어 전반적으로 부채 상환 능력이 양호하고 부동산을 포함한 총 자산은 총부채 대비 5배 이상 커 부채의 담보력이 양호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전문가와 시장의 입장은 다르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자산 거품이 꺼지면 가계부채가 부실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11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를 놓고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정부 부처 간 대책이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대책을 수립할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사전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융당국 ‘방조’+은행 ‘탐욕’ 합작품 = 올해 1분기 말 금융권 전체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 잔액은 1099조3000억원으로, 1100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대출 잔액은 2010년 1분기(740조8000억원)부터 올해 1분기까지 5년간 약 300조원(299조6000억원)이나 늘어났다. 올 1분기 가계신용 증가액은 전년 동기(3조5000억원)의 3배 수준인 11조6000억원에 달했다.
이 같은 가계대출의 가파른 증가세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와 금융당국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이 맞물린 효과다. 대출자 입장에선 지금 당장은 이자 부담이 크지 않다. 또 원금을 갚은 것은 나중 일이니 빚(대출)지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있다. 상당수의 주택담보 대출자들은 원금을 상환하지 않는 거치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른 은행의 거치식 대출 갈아타기를 통해 이자만 내는 기간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은행권에서 한동안 주춤했던 변동금리대출 상품 판매가 확대된 탓도 한몫했다. 은행 창구에서 저금리의 변동금리 대출로 고객들을 유혹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은행이 변동금리 상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금리변동의 위험을 대출자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낮아도 많이 팔기만 하면 남는 장사이다 보니, 금융당국의 방조와 은행권의 탐욕으로 가계부채 질적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저성장 국면에서 자산가치나 소득이 크게 상승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많은 빚을 내 집을 샀거나 아예 담보없이 신용대출을 한 계층이 폭탄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안일한 대응… 컨트롤타워가 안보인다 = 가계부채와 관련한 가장 큰 문제는 대출 규모다. 쌓이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한결같이 가계부채가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를 안심전환 대출로 (관리)하고 있고 연체율도 하향 안정세라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가계부채 대책은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이나 취약계층의 가계대출 증가세를 우려해 이를 중심으로 내달 중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총량규제 없이 질적 구조 개선을 통해 가계부채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연 30% 이상 고금리를 부담하는 서민층의 이자부담 경감을 위해 대부업법 개정에 집중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인위적으로 대출을 억제(양적축소)하지는 않겠다”며 “경기회복, 주택시장 정상화 등에 부담을 야기하지 않는 선에서 미시적·부분적 관리를 강화해 잠재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은행은 부채 총량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가계부채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부채 총량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내달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원점에서부터 시각차가 커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가계부채관리협의체가 각 부처간 의견이 엇갈려 3개월이 되도록 구체적인 대책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