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 現상태는 ‘쿼바디스’…수출도 내수도 구조적 함정에”

입력 2015-06-2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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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인터뷰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같기도 하다. 진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생활 속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상황들이 우리 경제가 쉽지 않은 국면에 빠져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건 사실이다. 이자율은 1%대로 뚝 떨어졌고 이와 맞물려 전셋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한다. 이자율을 낮춰 놓으니 빚을 내 집을 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무리해도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현재의 일자리가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고 이자율이 오르기 시작하면 막아낼 방도가 없을 테니 말이다. 물가상승률이 안정됐다고 하는데 장바구니를 채우려면 왜 돈은 더 많이 드는 건지, 교육비는 원래 비탄력적이다. 여기에 작년 ‘세월호 사태’에 이어 올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MERS)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복병까지 나타났다.

정부는 “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래저래 위험하긴 해도 위기는 아니다. 불안감을 불식시킬 의무가 있는 정부로선 애써 현상에 대한 판단을 명확히 하기보다는 극복의 의지를 강조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도 같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에게 물어봤다. 김광두 원장은 “우리 경제가 위기냐 위기가 아니냐라고 진단하는 것보다는 장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 현상보다는 구조적 변화 분석에 초점을 둔 답이다.

김 원장은 “정부가 오판을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경제에는 심리적 요소도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얘기할 때는 조금은 낙관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좋은 측면을 더 강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이 그렇다고 ‘정부 편’을 드는 건 아니다. 그는 인터뷰 서두에서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라고 불리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나를 부를 때 앞에 붙이는 수식을 좀 바꿔줬으면 좋겠다”면서 김 원장은 “개혁적 보수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으로 불러 달라”고 당부했다. 그가 말하는 개혁적 보수란 ‘보수의 기본 가치는 지키되 필요한 변화는 꾸준히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들어 행사나 인터뷰 등 공식 석상마다 단호하게 이렇게 말해 왔다. 돌려 말하면 현 정부는 필요한 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는 것일까. 이에 대해선 구체적인 답을 주진 않았다.

경기가 매우 좋지 않다는 건 국가미래연구원에서 내고 있는 민생지수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고 김 원장은 강조했다. 연구원에서 나온 가장 최근의 민생지수는 지난해 4분기 결과. 기준치를 100으로 놓고 볼 때 97.8로 7분기째 하락하고 있는데 2003년부터 지수를 측정해 온 이래 역대 최저치다. 고용과 소득, 주택가격과 전세가격, 주가, 교육비와 식료품비 지출 등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경기가 최악이란 얘기다.

“메르스는 분명 우리 경제에 매우 나쁜 영향을 줍니다. 우선 심리적으로 사람들은 움직이거나 소비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고, 이게 지속될 경우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겠죠. 정부에 대한 신뢰도 역시 떨어질 것이고요. 대외적으로는 우리나라 국가 브랜드 가치가 떨어집니다. 밖에서 한국을 ‘전염병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나라’라고 보게 되면 한국 상품이 고급화되는 과정에서 갑자기 싸구려 이미지로 떨어질 수도 있고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메르스로 인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뚝 끊어지자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특히 한국에 관광을 왔다가 메르스에 걸렸을 경우 전액 보상을 해주는 ‘한국 관광 안심보험’ 상품도 내놨는데 현실성이 없는 대책이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 원장 역시 “메르스에 걸리려고 한국에 오는 것도 아니고, 걸리면 낫게 해주겠다는 게 어떻게 대책이 되느냐”면서 “지금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이것을 제대로 관리할 것이냐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정책의 유효성이 약화될 수 있는 상황이라 적절치 못한 대책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과거처럼 우리가 고성장할 수 있는 경제가 아님을 깨닫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교역량 증가율을 끌어올렸던 중국이 내수 중심의 성장을 꾀하면서 수출 여건이 악화되고 있고 유럽 경제도 어려워진 대외 요건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저출산·고령화라는 추세에 접어들면서 내수도 크게 늘어날 수가 없다는 것. 게다가 기업들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최근까지 과도했던 설비투자를 해소하는 데 시간도 걸릴 것이란 설명이다. 그래서 김 원장은 “수출 감소의 원인도 구조적이고 내수도 마찬가지라 저성장 상태가 오래갈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혹은 할 수 있는 몫은 무엇일까.

“금리인하 같은 심리를 달래주는 고육책도 필요했다고 판단하지만 실질적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의 경우 경기를 활성화화 하기 위해선 필요한 노력이겠지만 문제는 이 선택으로 인한 부담이 다음 정부, 후세대로 넘겨진다는 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김 원장은 밝혔다. 추경을 한다고 해도 다음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정부가 더 나서서 해야 할 것은 가계부채 문제 완화나 교육비와 통신비 등 서민들이 직접 피부로 느끼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미시적 정책을 쓰는 것이라고 김 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제가 보기엔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국내 요인 가운데 가장 심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처분 소득에 비해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을 넘어섰고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의 경우 사업을 위해 대출을 받았다가 이를 상환하기 위해 또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 구조에 들어섰는데 이게 370조원가량 되고 이 가운데 10%만 부실화된다고 해도 우리 금융 시스템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좀비기업들이 유지하면서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도 해소해야 우리 경제의 혈류가 뚫릴 수 있고 공무원연금 등 4대 개혁 과제가 예정대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잘 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의 경직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 경제는 체질이 유연합니다. 그러니까 변화할 능력이 있다는 얘기죠.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굉장히 경직화돼 있어요. 뭘 하나 바꾸려도 해도 바꾸기 어렵다는 겁니다. 국가부채를 도저히 버틸 수 없어지니까 연금개혁도 하자고 했는데 결국은 목적에 비춰선 별것 아닌 개혁이 되어 버렸죠. 규제도 마찬가집니다. 규제가 하도 많아서 뭘 하나 하려면 절차를 밟다가 힘들어 못하기도 하죠. 사회 도처에 이런 경직성이 깔려 있어요.”

경직성에 대한 경계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김 원장은 보수와 진보 같은 이분법도 경계한다. 그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시도하는 ‘2015 다함께 정책엑스포’에도 참여해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한 토론에 나섰고, 국가미래연구원 차원에서도 보수와 진보가 함께 토론하는 장을 계속해서 만들어갈 계획이다.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자기 말만 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에 대한 아쉬움도 이런 면에서 살짝 토로됐다.

현실적인 판단은 ‘양극화 해소’란 표현에 대한 이견에서도 드러났다. 양극화 해소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양극화를 어떻게 해소합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양극화를 완화하긴 해야겠지요”라고 말했다. “저는 그것의 핵심은 교육에 있다고 봅니다. 돈 없는 사람이나 돈 있는 사람이나 다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면 열심히 뜻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은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돈 없는 사람들은 좋은 교육을 받기 어렵죠.”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이런 결과는 비정상이고 따라서 공교육의 수준을 높이고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줄 수 있도록 하면 ‘개천의 용’도 생겨나고 양극화는 많이 완화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 각종 투자를 함으로써 일어나는 내수 부양 효과도 기대된다고. 정부는 또 전셋값이나 통신비 부담을 줄이는 정책을 펼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경제의 현실에 대한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가는 가운데 김 원장에게 현 상태를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한국 경제는 쿼바디스(Quo vadis)”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에게 “어디로 가나이까?”라고 묻는 라틴어 문구. 구조적인 문제들을 풀어가는 데엔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과정은 마치 길을 잃은 듯한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엄중한 경고로 들렸다.

김윤경 기자 s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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