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올해는 아시아 외환위기 10주년이 되는 해다. 1997년 외환위기는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외환과 금융에 대한 무지로 서구자본에 당한 어처구니없는 사태였다.
이러한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돼 온 것이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해외 투자와 진출이었다. 당시 경험도 없이 동남아나 러시아에 무작정 진출하는 것이 요즘 말로 '블루오션 찾아 떠나기'이었고 또한 유행이었다.
사전 지식도 없이 무모한 추진력만으로 빚어진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해외 비지니스 실패사례중 대표적으로 꼽을 만 한 것이 SK증권과 JP모건의 장외파생상품 소송 사건이다. 1995년에 발생한 233년 전통의 베어링증권 파산과 1998년 홍콩 페레그린 파산사건에 비견되는 국내판 사례다.
올 2월로 SK증권과 JP모건 간에 무모한 계약이 체결된지 만 10년이 된다. JP모건은 1997년 2월 11일 SK증권 등 국내 3개사와 함께 8650만 달러를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표시 만기1년 연계채권에 투자했다. 이 계약은 JP모건은 만기인 1998년 2월 12일 투자금액과 보장수익금을 합한 금액을 회수하고 투자로 발생한 이익 및 손실은 모두 SK증권 등이 가입한 펀드가 부담하도록 했다.
여기에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한 개념인 엔캐리 트레이드가 가미되면서 큰 피해를 가져왔다. 수익률의 극대화를 위해 투자금 외에 엔화로 자금을 빌려 돈을 태국 바트화로 바꿔 원금의 5배까지 부풀려 투자를 했는데 동남아통화가치가 폭락, 이전에 안정적이던 엔화와 동남아 통화가치관계가 깨지면서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펀드의 1년 계약만기가 다가온 1998년 2월 9일 SK증권 등 국내금융기관과 JP모건 간에 수억 달러의 국제소송이 시작됐고(유사한 펀드를 놓고 국내 다른 기관과 JP모건 간의 소송도 진행되었다) 결국 JP모건 측에 수억 달러어치 주식과 현금을 물어주고 타협을 통해 소송이 종료됐다.
SK증권과 JP모건의 소송사태으로 상징되는 이 사태는 첨단금융기법에 대한 이해 없이 막연하게 국제간 금리차를 얻으려다 신세기투신과 한남투신의 파산을 초래했고, SK증권도 파산직전까지 몰렸으며 나아가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사태다.
또 이 사건은 당시 SK증권 CEO였던 박도근 사장의 퇴진을 불러왔고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의 단초를 제공해 SK그룹 전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계기가 됐다. 일개 기업을 떠나 우리경제로 하여금 국제금융시장에서의 냉혹함을 느끼게한 값비싼 수업료였던 셈이다.
그러면 현재 어떠한가? 국제적으로 엔캐리 트레이드의 규모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 1997~98년 상황과 비슷한 양상이다.정부의 장려에 힘 입어 국내금융기관은 다시 해외로 물밀 듯 진출하고 있어 10년 전 상황을 다시 떠오르게 하고 있다. 심지어 당시 당사자였던 금융기관들이 해외에 사무소를 내거나 법인을 만들고 해외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 아픈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대비를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최근 양상을 보면 충분한 검토나 사전조사 후에 진출하는 지에 의문이 들 정도이다. 일부는 이 같은 군중심리에 휩싸여 유행병 식으로 추진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지난해 12월 SK증권 등 3개 국내 증권사가 장외파생상품 인가를 신청한 바 있다. 현재도 10개의 국내증권사가 이미 인가를 받은 상황에서 장외파생상품으로 파산할 뻔한 회사가 장외파생상품 영업인가를 신청한 것은 아이러니다.
현재 장외파생상품 업무를 취급하기 위해서는 자기자본은 1000억원 이상, 영업용 순자본비율은 300% 이상을 각각 유지해야 한다. 국내외 경험상 이러한 요건 만으로 기본적인 리스크 관리조차 가능한지 의문이다.
최근 미국의 장외거래규제움직임은 이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지난 여름 장외에너지 파생상품에서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파산한 아마란드 헤지펀드 사건 후 민주당을 중심으로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규제입법이 추진 중이다.
전문적인 헤지펀드 조차 파산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보면 경험이 미천한 한국사정을 감안해 볼 때 장외파생상품에 대해 신중해야 할 것이며 자기자본 등의 요건 외에도 전문인력의 확보와 리스크 관리 강화 등과 최소한의 관리감독을 위한 규정제정이 필수적이라고 판단된다.
IMF 사태 10주년인 올해. 당시의 SK증권과 JP모건 사태는 방임에 가까운 당국의 태도가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떠오르게 한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은 망각을 초래할 만큼 충분히 긴 기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