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정부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면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체)과 채권단의 거부로 불발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베를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그리스 국민투표 전까지는 절대 아무 것도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이 새 제안을 내놓고 유로그룹이 1일 전화회의에서 이를 다시 논의하는 등 협상을 억지로 이어가고 있지만 사실상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망이 불확실하다는 평가다.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등 국제채권단이 움직일 수 있는 근거가 그리스 국민투표로부터 나오기 때문.
그러나 국민투표에서 ‘반대’로 결론이 나오면 그리스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EU는 이미 긴축안을 거부한다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홀거 슈미딩 베렌베르크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이기면 IMF와 EU가 인도적인 구제 이외 그리스에 대해 손 쓸 방법이 거의 없다”며 “그렇게 되면 그리스는 그렉시트로 가게 되는 첫 걸음인 차용증서(IOU)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리스의 자본통제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정부가 유로화 대신 새 결제수단으로 IOU를 써서 재정지출을 충당할 것이라는 얘기다.
EU가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는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구제금융안이 가결되고 치프라스 총리가 사임한 가운데 새 정권이 들어서서 3차 구제금융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협상에서 완고한 태도를 고집해 EU와 IMF 등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다.
다만 변수는 그리스 국민의 태도에 있었다. 지난 24~26일 카파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 국민투표에서 찬성하겠다는 의견이 47.2%로, 반대(33.0%)보다 우세했다. 유로존 잔류를 원한다는 응답자도 67.8%로, 그렉시트를 택한 응답자(25.2%)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국민투표 이후 한 달 내 다시 치러질 조기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정권을 다시 잡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그리스 국민이 유로존 잔류를 바라지만 기존 정치세력은 불신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구제금융 협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그리스 경제가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어왔기 때문에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될 치프라스 정권의 태도가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점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그리스 시중은행에서 올 들어 5월까지 350억 유로의 예금이 인출됐다. 또 비그리스계 은행들도 같은 기간 300억 유로의 자금을 빼냈다. 그리스 은행들이 보유한 현금은 현재 20억 유로도 안 된다고 WSJ는 지적했다.
ECB가 현재 890억 유로에 이르는 긴급 유동성 지원(ELA) 한도를 설정하고 있지만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이를 높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그리스 위기가 그 이전의 글로벌 금융위기나 유럽 재정위기 등과는 달리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그리스 정부에 협상 타결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그리스 디폴트가 미국 금융시스템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는 유럽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그리스 국민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블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도 이날 연설에서 “그리스 위기가 유럽으로 확산될 위험은 낮으며 미국 경제에도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ECB의 양적완화(QE)가 그리스 사태 확산 리스크를 제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