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기준금리 인하, 잘 따져본 결정인가

입력 2015-07-0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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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6월 11일 한은의 기준금리를 1.75%에서 1.5%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기준금리란 금융기관 간의 거래에 적용되는 도매금리를 말한다. ‘돈장사’를 하는 기업인 금융기관은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예금금리도 낮추고 대출금리도 낮추게 되었다. 금융기관이 다른 금융기관으로부터 종전보다 낮은 금리로, 그리고 거의 무제한적으로 차입할 수 있다면 대출금리를 낮추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종전보다 낮은 금리로밖에 대출할 수 없으므로 예금금리도 낮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총재의 기준금리 인하는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다. 그는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의 금리 인상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지만, 한국의 경제 사정이 악화될 때에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해 왔다.

한국은행은 왜 기준금리를 낮췄을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의 가능성은 정부의 압력이다. 정부는 규제 타파를 통해 기업의 투자가 살아나기를 기대했으나 효과가 신통치 않고 소득증대 정책을 통해 소비가 늘어나기를 바랐으나 그 효과도 미미하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이 예상을 밑돌아 3%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잇달아 발표했다. 이 마당에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짜서 정부 지출을 늘리고 싶지만 국회의 동의를 얻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그래서 추경예산 편성 때까지는 한은이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부양 분위기를 띄워 달라고 요청했을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걱정이다. 중앙은행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물론 한국경제는 성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은도 성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금리 인하가 성장을 가져올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은이 정부의 요구를 수용했다면 그동안 쌓아 온 한은의 독립 노력에 역행하고 통화신용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한국은행이 시장의 요구에 굴복한 것이다. 여기서 시장은 누구인가. 기업, 특히 대기업이다. 그들의 요구는 언론을 통해 표출된다. 대기업 광고에 의존하는 언론, 특히 보수 언론은 외국 중앙은행의 예를 열거하면서 경제 상황이 어려운데도 한국은행이 아무 일도 안 한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변덕스러운 시장에 흔들리지 않고 시장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시장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한 이유다. 두 번째 가능성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한은 독립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끝으로 한국은행이 충분한 실증 분석 없이 기계적 논리에 따라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을 가능성이다. 논리는 이랬을 것이다. 추가 금리 인하는 투자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금리 인하가 천문학적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는 가계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면 처분 가능한 소득이 늘고 소비도 따라 늘면 성장률도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 수도 있다. 또한 고용 없는 성장시대라고 하지만 성장 없이는 고용도 없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성장률을 올리면 고용이 늘면 늘었지 줄겠느냐는 논리에서 금리를 인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금 한국경제에서 투자는 더 이상 이자율의 함수가 아니다. 금리 인하가 투자를 늘릴 것 같지 않다는 얘기다. 소비도 마찬가지다. 금리 인하가 가처분 소득은 늘릴지 몰라도 가계부채가 많고 메르스 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소비가 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금리 인하가 주택자금, 생활자금, 교육자금에 대한 수요를 자극해 가계부채가 제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날까 걱정이다. 또한 미 연준이 곧 금리를 올리고 한국은 낮추면 해외로의 자금 유출이 걱정된다.

어떤 이유로 이자율을 인하했든 이번 한은의 결정은 수긍할 수 없다. 한국은행이 더욱 의연한 자세로 외부 압력을 막고 시장을 선도하며 더욱 정교한 경제분석을 하길 바란다. 이러한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이 궁극적으로 금리 인하보다 한국경제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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