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중의 세상읽기] 피그말리온 콤플렉스

입력 2015-07-0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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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중 한국정치문화원 회장·전 가천대 객원교수

피그말리온 효과란 게 있다. 썩 좋은 이야기다. 유력한 한 인물이 한미한 처지의 사람에게 계속 깊은 신뢰를 주면 그가 유력자의 희망대로 하류에서 상류 인사로 떠오르게 된다는 희랍 신화에서 따온 근사한 용어다. 피그말리온은 조각 담당 신(神)이다. 그는 어여쁜 여인의 상(像)을 빚어 놓았다. 일구월심 그 조각상을 사람인 양 애모했다.

애정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에 감복해 마침내 조각상을 갈라테이아란 미모의 여인으로 바꿔 놓았다. 이 신화를 무슨 억하심정인지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뒤집어 놨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피그말리온 콤플렉스로 급전직하한다.

갈라테이아가 자신의 주인 피그말리온에게 반발한다. 희곡 속 여인은 물론 조각 같은 것과는 관계없는 시골 출신의 미인 아가씨다. 피그말리온도 지체 높고 부유한 상류사회 인사다. 그는 아가씨가 뭐든 무조건 자신에게 복속하는 걸 당연지사로 여긴다.

우리네 속담에 장마당에 나온 촌닭 같다는 말이 있다. 무명치마가 화려한 비단 옷으로 바뀌고, 감자나 캐 먹다가 매일 포도주에 스테이크를 먹자니 시골 아가씨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것에 그녀는 드디어 반기를 든다. “나는 시골로 돌아간다, 내 맘대로 먹고 또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는 나만의 생활이 좋다”. 피그말리온 역 배우는 망연자실하지만 되돌릴 길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에게 배신의 정치인이라고 공개적으로 질책한 건 피그말리온 희곡 내용과는 엇박자다. 또 유 의원이 시골 아가씨와는 달리 자신의 피그말리온인 대통령에게 내치지 말아 달라고 통사정하는 모습도 가령 버나드 쇼의 눈으로 본다면 기이할 터다. “이것들 봐요! 둘 다 그렇게 하면 내 소설이 엉망이 되지 않소?”

그러하다. 피그말리온 콤플렉스를 신화 내용의 이면에서 꿰뚫어본 그가 오늘의 우스꽝스러운 한국정치 풍경화에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 것 같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건 예상됐던 일이라 놀랍지 않았다. 행정부의 시행령에까지 국회가 족쇄를 채우려 한 건 위헌임을 필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그럼 그저 차분하게 이유를 설명하고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지 왜 소리소리 질러 야당 의원들과 함께 자신의 갈라테이아 유승민 원내대표까지 공개적으로 찍어 혼(?)을 내는가? 아무리 봐도 대통령이 그 품위를 잃은 모양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배신인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친박에서 비박으로 전환하면 그게 대역죄(?)라도 되는 건가?

서청원 의원 등 친박들의 얼굴 바꾸기도 기묘하다. 유승민 대표가 공무원연금 협상 타결이라는 목표 아래 야당 측 국회법 개정안을 받자고 했을 적엔 동의했다가 대통령의 호통소리에 놀라 그를 역적(?)으로 몬다면 조선왕조의 암군 선조 치하 시절이나 다를 게 뭔가? 말 그대로 한심하다.

대통령에게 묻는다.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게 작전이란 주장이 있다. 가뜩이나 여론 지지도가 죽을 쑤던 터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처 실패로 당장 ‘레임 덕’이라도 될까 봐 ‘오버 액션’을 하는 것이라면 계산 착오다.

국민이 그걸 모를 것 같은가? 여당과 협조해 조용히 위헌 법률을 폐기하는 쪽으로 가느니만 못했다. 대통령이 무슨 여왕인 양 행세해선 안 될 일이다. 김무성 대표의 ‘연체동물’ 역할도 이젠 한계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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