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운명을 가를 국민투표가 5일(현지시간) 실시됐다. 당초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게 맞설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고 그리스 국민은 압도적으로 채권단이 제시한 구제금융안에 ‘반대’를 택했다.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개표가 87% 진행된 가운데 ‘반대’가 61%로, 39%에 그친 ‘찬성’을 크게 앞질렀다. 국민투표 전 여론조사에서는 반대와 찬성렀이 1%포인트 안팎으로 팽팽했지만 실제 투표에서 부동표가 전부 ‘반대’에 쏠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국민투표는 유로존에 가장 큰 도전이며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안길 수 있는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국민투표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촉구했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이날 밤 대국민 TV연설에서 “우리는 오늘 민주주의의 승리를 축하한다”며 “그리스는 정답을 맞췄다. 이번 투표에 승자도 패자도 없다. 국민은 단결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는 내일(6일)부터 협상 테이블로 돌아간다”며 “채무탕감과 상환 기한 20년 연기 등 그리스 해법을 제시했던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 따라 채무탕감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이기면 협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48시간 안에 더 좋은 조건으로 합의안에 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의미하는 ‘그렉시트(Grexit)’를 염두에 둔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국민투표 반대가 유럽과의 결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고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는 미국과 독일 국채 가격이 오르는 등 시장에서 그렉시트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6일 파리로 건너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그리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긴급 회동한다. 두 정상은 7일 유로존 긴급 정상회의를 소집할 것을 촉구했다.
가장 큰 관건은 채권단의 요구를 거절한 그리스가 지원을 계속 받아 디폴트(채무불이행)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여부다. 그리스는 현재 은행 문을 닫고 해외송금을 제한하는 등 자본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지원이 없다면 은행들이 뱅크런(예금 대량인출)에 연쇄 부도를 일으킬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6일 예정된 ECB 회의에서 긴급 유동성 지원(ELA) 한도가 동결돼 그리스가 7일 이후에도 당분간 자본통제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그리스는 이미 지난달 30일 IMF 채무 약 16억 유로(약 1조9900억원)를 상환하지 않았지만 이달에도 ECB 채무 약 35억 유로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에 디폴트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
그리스가 지원을 받는 데 실패해 차용증서인 ‘IOU’를 발행하면 사실상 유로화를 포기하는 그렉시트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