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미디어 권력 시대, 콘텐츠보다 플랫폼

입력 2015-07-0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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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용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 교수

플랫폼 전성시대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구글, 야후 등 정보검색 엔진, 그리고 스마트 폰을 일컫는 플랫폼이 21세기 전 세계 미디어 문화산업의 생태계를 급속히 바꾸어 나가고 있다. 플랫폼은 콘텐츠의 매개자로서 콘텐츠를 저장하고 분배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확장하면서 미디어 문화시장의 지배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역시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있고, 카카오톡과 라인 등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 등 플랫폼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디어 문화산업에서 21세기 초반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콘텐츠다. 방송, 영화, 음악, 게임과 뉴스 미디어가 콘텐츠 제작자로서 큰 권력을 휘둘렀다. 미국의 신문과 매거진뿐만 아니라 문화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콘텐츠 생산자의 역할을 강조하며 콘텐츠 예찬론을 펼쳤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CEO였던 빌 게이츠가 1996년 ‘콘텐트가 왕(Content is King)’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콘텐츠는 방송처럼 인터넷에서 내게 많은 돈을 벌게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며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2000년도 들어 정치인과 미디어 비평가들을 중심으로 콘텐츠는 쿨 재팬(Cool Japan)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미디어 문화정책의 핵심으로 간주되었다.

콘텐츠는 그러나 21세기 들어오면서 플랫폼에 그 왕권을 넘겨주었다. 지난 2004년 페이스북이 등장하고,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면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정보검색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한 구글 등과 함께 플랫폼 시대를 활짝 열었다. 이들 플랫폼은 콘텐츠의 매개자로서 역할을 하면서 미디어 문화시장에서 누가 진정한 지배자인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바야흐로 ‘플랫폼이 왕’ (Platform is King)인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문화산업에서 플랫폼 전성시대가 열린 것은 먼저 구글과 애플, 그리고 넷플릿스 등이 콘텐츠 배분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인터넷을 콘텐츠의 배분과 전파를 위한 시스템으로 만들어 가면서 콘텐츠의 생산자를 하부 구조화하고 있다. 플랫폼이 하드웨어로서 콘텐츠를 저장하고 분배하는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면서 과거 콘텐츠의 생산자로서 그 위세를 떨치던 미디어 문화 생산자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플랫폼은 또한 자체에 내재된 상품 가치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플랫폼은 돈과 사람과 상품이 만나는 장소로서 이미 그 자체가 21세기 미디어 문화산업의 핵심 상품이 되었다. 루퍼트 머독이 운영하는 뉴스 코퍼레이션이 마이스페이스를 흡수하고,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하는가 하면,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하면서, 플랫폼이 미디어 문화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상품으로 등장했다.

이와 함께 플랫폼의 상업적, 문화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디지털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는 플랫폼은 방송과 영화 같은 기존의 미디어 문화산업과는 달리 생산자가 주요 행위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주요 행위자로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단순히 플랫폼이 보내주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를 만들어 내는 생산자 역할을 함께하는 프로슈머(prosumer)로 존재한다. 문제는 이들이 참여해 만들어 내는 이익을 모두 플랫폼 소유자들이 가져간다는 것이다. 예들 들어 페이스북의 이용자들이 ‘좋아요’를 클릭하고,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하면, 페이스북이 자체 개발한 알고리즘을 통해 이들의 정보를 상품화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9000여명 남짓한 직원만으로 2014년에만 무려 120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던 것은 바로 13억명이 넘는 이용자들 덕분이다.

플랫폼은 이제 단지 문화 미디어 산업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디지털 매개체로 성장했다. 21세기에는 따라서 플랫폼 소유자들과 플랫폼의 이용자들이 공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콘텐츠와 플랫폼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소비자인 이용자들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 미디어 생태계의 주요 행위자들인 이들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제도 마련과 협력 정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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