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는 것일까.
헌법재판소는 9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을 기피한 의무복무 대상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사건 공개변론을 열었다.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합헌이라고 2차례 결정했다. 그러나 새 재판부가 구성된 이후에는 아직 같은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내린 적이 없다. 재판관들은 각자 다양한 질문을 쏟아내며 열띤 토론에 참여했다.
■ 강일원 재판관, "전시에 양심적 병역거부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사건 주심을 맡고 있는 강일원 재판관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기본권으로 보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군 복무 중이나 전투상황에서 병역거부하는 것도 보호돼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극단적 사례일 수 있지만, 군복무를 마치고 향토예비군 복무와 관련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헌법소원 당사자를 대리하고 있는 오두진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극소수지만, 군대 내에서 병역거부를 해 수감되는 경우가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때 초기에 이러한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고, 과거 전쟁중에도 양심적 병역거부가 문제됐지만 진지함이 증명됐을 때 병역거부를 보호했다'고 답했다.
강 재판관은 국방부 측에는 보충역 편입자가 점점 늘어나는 점을 근거로 들며 "대체복무제를 마련해달라는 것과 모순되는 상황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국방부 측 대리인인 서규영 변호사는 "보충역은 4주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는 점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말하는 대체복무와 보충역의 사회복무와는 그러한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답했다.
■ 김이수 재판관, "대체복무제 마련해야…오히려 정부가 나서야"
그동안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사건 등 사회적으로 이슈를 끄는 사건에서 소수의견을 밝히며 이목을 집중시켰던 김이수 재판관은 이날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 다시 한 번 눈길을 끌었다.
김 재판관은 "2013년 국방계획에 따르면 2022년까지 1만 1000명의 병력을 감축할 예정인데, 그렇다면 국방이라는 것이 인력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냐"며 "간부 장교와 부사관은 늘이돼 병은 줄이는 계획이 서있는 상황에서 오늘 답변을 정부측에서 충분히 연구하고 나오신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 변호사는 정책적 필요에 의해 병력을 줄이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2022년이 되면 입영 수요와 공급수가 일치하고,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병력자원 절대숫자가 부족하다"며 "이러한 상황이 닥칠 게 분명하다면 어쩔 수 없이 그 이유만으로 군대 규모를 줄일 수 밖에 없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재판관은 이후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는 데 가까운 질의를 던졌다. 김 재판관은 " 2013년 전해철 의원이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 보면을 보면 대체적 복무를 일반 병역의 1.5배로 정하고 있다"며 "합리적인 제도를 마련하면 국방에 다른 형태로 기여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 한국인권이 부끄러운 현실로 지적되고 있는데, 오히려 정부가 좀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 재판관은 서울대와 변호사협회에서 공동으로 대체복무에 관한 연구결과를 내놓은 것을 언급하며 " 대체복무제 도입에 관한 자료를 보면 도입해서 큰일날 제도는 아니다, 국가가 판단을 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 변호사도 "합리적 대체복무제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합리적 대체복무제라면 허용하는 법을 만들 수 있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만 서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이 위헌인지 여부는 국회에서 바람직한 정책을 마련하는 것과는 별개라는 견해를 밝혔다.
■ 이진성 재판관, "대체복무제 긍정의견, 전시가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
이진성 재판관은 청구인 측이 제시한 한국 갤럽 조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국민의 68%가 대체복무제 도입에 긍정적이라는 조사가 있었지만, 이것은 평시를 전제로 한 것이고 전시를 전제로 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겠냐는 게 이 재판관의 생각이다.
이 재판관은 또 "2차 세계대전에서도 전투원만 있는 게 아니라 비전투원도 전쟁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 주장되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전시상황에서의 비전투원으로 근무하는 행위까지도 거부한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청구인 측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전시와 평시 모두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생물학, 화학전이 발달한 현대전에서 전·후방 구분이 약해지는 추세에서 전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각종 전쟁으로 인한 재해로부터 인명을 보호하는 역할을 통해 대체복무자들이 제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오 변호사는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완전히 전투를 하지 않는 시민적 대체복무도 인정한 반면, 나치는 병역거부를 무조건 사형시켰는데, 전쟁의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서 변호사는 대체복무를 인정하면 결국 병역의무를 강제할 방법이 사라진다는 현실론을 거론했다. 그는 "1년에 600명밖에 안되는 병역거부자들을 '새발의 피'라고 하시지만. 병역법이 병역기피자를 처벌함으로써 일반 젊은이들이 병역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이정미 재판관,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기피자 어떻게 구분하나"
병역거부를 인정할 것이냐에 관한 문제에서 유일한 여성재판관으로 공개변론에 나선 이정미 재판관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기피자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판단자료가 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청구인 측은 "대체복무의 업무강도가 일반 병역보다 높고, 복무기간도 길게 하면 양심의 진실성과 깊이가 드러난다"며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의 경우 군사정권 하에서 박해를 받고도 신념이 바뀌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신념이 가변적이지 않다는 것은 증명됐다고 본다"고 답했다.
■ 헌재, "병역법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지 검토한 뒤 결론 낼 것"
헌재는 이날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인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형사처벌하는 것이 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등의 쟁점에 관해 청구인들과 이해관계기관, 참고인들의 의견을 듣고 사건을 심리한 뒤 결론을 내겠다"며 공개변론을 마무리했다.
지난 60년간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 수는 1만8000여명에 달한다. 이번 헌법소원을 낸 홍모 씨 등은 '병역 면제가 아니라 대체복무의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는 만큼, 징역형으로 병역거부를 다스리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인권이사회의 결의,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는 점도 근거로 삼고 있다.
반면 국방부 측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병역거부를 형사처벌하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체복무를 인정하게 되면 병력자원의 손실로 인해 국가안보 유지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국제인권기구의 해석에 대해서도 권고적 효력에 불과하므로 위헌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일부 국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인정된다고 해도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