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회장이 해외지사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자사 주식을 취득한 것은 삼성물산이 우호 관계인 KCC에 자사주를 넘긴 것과 같습니다. 회사 차원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입니다"
최근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을 상대로 법적 분쟁을 벌여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횡령·원정도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세주(62) 동국제강 회장의 재판에서도 이 내용이 인용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현용선 부장판사)는 10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장 회장에 대한 3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장 회장 측은 횡령자금으로 자사주를 취득한 게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합리적인 경영판단에 따라 한 행동일 뿐 사익을 추구해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혐의액수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날 장 회장의 '미국법인 동국인터내셔널(DKI) 부외계좌 관련 횡령과 재산국외 도피 혐의'에 관한 구술변론과 서증조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지배주주 개인의 승계과정에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DKI의 부외계좌를 활용한 것이지, 회사 차원의 경영권 방어 목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대 회장인 장상태 회장이 동생 장상돈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 대비해 주식을 매입했다"며 "지배주주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장 회장 개인 소유의 주식이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당시 적대적 M&A가 가능했나 살펴보면 실제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장 회장 측이 "1994년 증권거래법이 개정되자 적대적 M&A에 노출됐고, 이런 시도가 있으면 회사기업 가치가 훼손될 뿐 아니라 전체 주주, 종업원 이익이 침해될 수 있어 대비했다"고 주장한 내용을 반박한 것이다.
검찰은 "일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취득하는 사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장 회장처럼 조세피난처를 통해 누가 구입한 지 알 수 없는 펀드를 통해 취득하는 게 아니라 최근 삼성물산이 KCC에게 자사주를 넘기고 공시한 것처럼 대응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인은 "당시 많은 상장사들이 자사주 취득 등의 조치를 취했다"며 1994년부터는 대부분의 상장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했다"고 재반박했다.
장 회장 측은 동국제강 본사가 사실상 DKI의 모회사라고 주장했다. 2003년 자기소유 주식 처분에 따른 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DKI의 미수금으로 남겨 동국제강이 부담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자기소유 주식의 매각 손실을 부담하는 것은 횡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변호인은 "주식 취득 결정은 선대 회장이 한 것이고, 장 회장이 취임하던 2001년에는 이미 DKI에 대한 지급보증채무가 존재했으므로 장 회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이행한 것 뿐"이라고도 덧붙였다.
변호인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 때문에 자사주 취득을 하게 됐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장상돈 회장의 지분은 선대 회장의 경영권을 공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장상돈 회장은 한국철강의 계열분리만 요쳥했을 뿐 형인 장상태 회장의 경영권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다음 기일은 오는 17일 오후 2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