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영리단체(NPO)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행 중 하나는 ‘영리조직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조직의 성과를 도출하고, 인사평가의 방식을 개선하고, 모금을 위한 마케팅 전략을 구상하는 것들이 그 내용이다.
이런 유행에 대한 분석들은 다양하다. 시대적으로 하이브리드가 ‘대세’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비영리조직에 영리조직 출신의 간부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존의 비영리 활동에서 충분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 흐름을 일찍 주창한 이가 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피터 드러커다. 피터 드러커의 이야기는 앞서 언급되었던 ‘영리 조직의 방식’을 더 명쾌한 표현으로 정의한다. 그것은 ‘전략’이다. 영리조직이 그러하듯 목표를 설정하고, 시장을 세분화하고, 각각의 시장에 맞는 방법론을 적용하고, 측정하고, 평가하고, 개선하라는 의미이다.
사실 영리조직과 비영리조직은 그 목표는 다르지만 비슷한 조건에 놓여 있다.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서 최대의 성과를 얻어야 하는 것,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조직원의 성장과 조직의 재생산을 도모해야 하는 것, 무엇보다 지속가능해야 하는 것. 이러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피터 드러커의 제안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요즘 비영리단체들에게 ‘영리조직의 방식을 배우라’는 요구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맥락을 가진다. 첫 번째는 기업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같이 일하고 싶게’ 변화하라는 주문이다. 비영리조직의 느린 의사결정과 원칙에 충실한 업무진행방식이 기업에겐 답답하게 느껴진다. 두 번째는 ‘모금을 늘리자’는 비영리단체 내부의 욕구다. 영리조직처럼 일하면 모금이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있다. 세 번째도 비영리단체 내부의 욕구인데, ‘비영리조직의 문제해결력을 높이자’라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맥락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할 것이 없다. 기업이 같이 일하고 싶게 변화하는 것이 파트너십의 혁신이 될지, 아니면 기업의 하위파트너로의 전락이 될지는 해당하는 비영리조직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측하기로는 기업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해내는 비영리조직을 찾기 힘든 한국적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후자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비영리조직이 영리조직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모금이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또한 비영리조직이 모금중심의 조직으로 변화하는 순간, 비영리조직의 전통적인 지원자들인 개인후원자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다.
우리, 비영리조직은 물론 그 외부에 있는 기업과 공공, 시민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비영리조직의 문제해결력이다. 문제해결력이 비영리조직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과 공공이 못해내는 블루오션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문제 해결은 정말 비영리조직의 블루오션일까? 기업은 태생적으로 이익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만들어내는 조직이다. 물론 이익을 내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욕구나 문제들이 해결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들이 생긴다. 전국 최저가로 상품을 제공하겠다는 유통업체의 노력 덕분에 물가는 싸지지만 재래시장은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이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영리활동의 본질이다. 그나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기업활동으로 기업외부에 발생하는 위험을 기업의 외부에 방치해 두지 않고 기업의 책임범위 안에 두겠다는 선언이다.
공공 역시 사회문제 해결을 전적인 목표로 삼지는 못한다. 자원의 배분과정에서 정치적인 의사결정과 힘의 역학관계, 그리고 행정적인 효율성을 고려해야 하므로, 늘 ‘사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비영리조직은 기업과 공공 사이에서 사회문제를 다루어왔다. 공공 정책의 사각을 메우고, 기업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피해를 경고하거나 감시했다. 정부의 역할이 커지건 작아지건, 기업이 사회적 책임(CSR)을 내세우건 공유가치창출(CSV)을 내세우건 비영리조직의 태생적인 역할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회문제해결에 관해, 비영리조직은 오래된 역사와 깊은 통찰, 그리고 경험을 가지고 있다.
만약 비영리조직이 ‘영리적인 방식으로’ 변화한다면, 그것은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 진용을 재정비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방법은 이미 많은 이들의 말과 글을 통해 전승되고 있다. 비영리조직이 가진 제한된 자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료하게 정의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명감을 가진 젊은 직원이 문제해결력을 갖춘 관리자들과 격렬하게 토론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갖추어야 한다. 기업의 기부금은 덩치는 크지만 한시적이고, 개인후원자들의 결집은 조직의 평생 자산이다. 비영리조직에게 필요한 것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미션에 부합하지 않으면 포기하거나 보류하는 결단력이다. 기부금을 모금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모금캠페인에 등장할 불쌍한 사람이나 사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단체의 투명성과 문제해결력을 입증할 수 있는 정확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차별화와 브랜딩의 다른 이름은 ‘집중’이다. 자기 조직만 번창하려고 하면 비영리조직 생태계가 멍들고 사회문제 해결의 길은 멀어진다. 기업이나 권력은 단순한 스폰서나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문제 해결에 함께 할 조력자이면서 감시의 대상이다.
이 모든 말과 글들은 비영리조직의 변화가 우리 사회의 건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감을 전제하고 있다. 비영리조직, 변해야 산다. 비영리조직이 살아야, 국가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