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안이 졸속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정부가 3%대 성장률 목표에 집착하다 보니 이렇게 무리하게 짰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추경(追更)을 단순히 성장률을 조금 높이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추경(秋耕), 즉 내년 농사를 위해 논밭을 미리 갈아두는 ‘가을갈이’가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는 제안이 나와 눈길을 끈다.
13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 3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가뭄 피해를 극복하고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11조8000억원을 규모의 추경안을 발표했다. 정부와 여당은 오는 20일까지 원안대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예상보다 심화된 경기부진에 따른 세수결손과 메르스 및 가뭄 피해 대책을 위한 추경편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정부의 추경 규모와 내용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의 반복된 장밋빛 경제전망으로 편성된 5조6000억원의 세입경정 예산과, 추경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등을 전액 삭감해 전체 규모를 6조2000억원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에 포함된 세부사업이 4건당 1건꼴로 요건 불충족, 중복, 계획 내용 및 효과 부실 등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145개 정부의 추경 세부사업에 대한 분석 결과 36개 사업에서 45건의 문제점이 파악됐다.
추경의 효과가 정부가 기대한 대로 이뤄질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정부는 이번 추경을 통해 성장률이 0.3%포인트 제고돼 올해 3%대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추경 규모에 비해 실제 재정지출 확대분이 크지 않고 내용적으로도 정책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시기적으로도 집행 기간이 4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아 한계가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번 추경을 포함해 총 22조원 규모의 재정보강책이 3분기에 100% 집행될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0.26%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100% 집행이라는 비현실적인 전제를 하더라도 정부의 추경 효과 예상치 0.3%에 비해 0.04%포인트 낮다.
마크 월튼 BNP파리바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는 추경 편성으로 올해 0.3%포인트 정도 경기부양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효과는 이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또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저조한 경기지표를 나타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은행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2.8%도 실현될 가능성이 작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3%대 성장이라는 목표에 연연하면서 추경을 운영해가기보다 중ㆍ장기적 정책구상과 잘 정비된 제도를 마련하는 데 더 힘을 쏟아아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김진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실장은 “경기침체를 해결하는 데 돈은 한계가 있다”며 “정부는 추경을 경기를 회복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당장의 경제적 충격에 대한 완충장치이며 진통제뿐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추경이 성장률을 단순히 조금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되고, 추경(秋耕), 즉 추수가 끝난 다음 이듬해 농사를 위해 가을에 논밭을 미리 갈아두는 가을갈이가 돼야 한다”며 “올해 남은 기간 적극적인 재정 운용을 통해 대내ㆍ외 경제충격을 잘 수습하고 내년에는 보다 나은 성장 여건을 만들기 위한 제도와 시스템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