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역사를 낳는다-세계 여성박물관 현지 취재] <1>삶의 보전이 곧 여성의 발전이다

입력 2015-07-14 16:49 수정 2015-07-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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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평등 가치 일깨운 상처와 억압의 여성사 잊지 말아야… 이제 우리나라도 제대로 된 ‘여성박물관’ 세워야할 때

▲국립 여성사전시관의 외부(왼쪽)와 여성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내부 상설전시장. 신태현 기자 holjjak@

여성은 낳는 존재다. 잉태와 출산은 모든 암컷에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 존재의 한계를 결정짓는 불가피한 조건이다.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고 낳음으로써 이 세계에 기여하고 봉사한다. 남성이 죽이는 성(性)이라면 여성은 낳는 성(性)이다.

이렇게 중요한 성인데도 여성이 불행하고 억압 속에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우월성이 낳는 성이 아니라 죽이는 성에 주어졌다는 데서 비롯된다. 인류의 역사는 남성의 역사이며 여성 억압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을 남성에 이은 ‘제2의 성’이라고 명명한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는 1949년에 같은 제목의 책을 내면서 원시시대부터의 여성 억압을 살펴본 뒤 “여성의 모든 역사는 남성이 만들었다”고 갈파했다. 그리고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남자는 어머니라는 여성의 아들이다. 남자에게 여자는 출생의 근원이자 영원히 돌아가고자 하는 고향이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여자에 대해 ‘육지와 바다의 모든 괴물 가운데 가장 큰 괴물’(그리스 극작가 메난드로스), ‘불가해한 존재’(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온건하지도 착실하지도 않은 짐승’(성 아우구스티누스)이라고 말하곤 했다.

남성에게 여성은 원죄의 매개자(이브)이면서 동시에 구원의 매개자(마리아)다. 여성은 어머니가 됨으로써 새로 태어나며 폐경 이후에야 ‘암컷의 굴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부아르를 다시 인용하면 “여자는 남자에게는 없지만 남자가 갖고 싶어 하는 전부이며, 남자의 부정이고 남자의 존재 이유다.” 그리고 “이 세상에 여자가 없었다면 남자들은 여자를 일부러 만들어 냈을 것이다.”

여성은 중세 암흑기를 거친 뒤에도 끝이 없을 것처럼 무시됐고, 19세기 유럽에서부터 인권과 존재가치가 비로소 신장되기 시작했다. 상처와 억압으로 피투성이가 된 여성들은 여성의 힘과 인권의 중요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핀란드(1906년), 노르웨이(1907년)에 이어 독일(1919년), 영국(1928년), 프랑스(1945년), 미국(1946년) 등의 국가가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하면서 여성의 정치적 권리가 커져왔다. 러시아에서는 레닌이 10월혁명에 성공한 직후 “여성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면서 불이익을 안겨주고 혹은 차별하는 모든 법은 폐지됐다.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선언이 곧 현실은 아니다. 여성은 여전히 열등한 성이며 세계와 역사는 남성이 만들어왔다. 풀랭 드 라 바르(프랑스)는 17세기에 이미 남녀동등을 이야기한 지식인이지만 그는 “남자가 여자에 대해 쓴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 남자는 심판자이면서 동시에 당사자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바로 그처럼 여성의 인권과 삶의 조건은 장식적이고 시혜적인 차원의 보장을 받는 정도였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여성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달라지면서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운동의 영향으로 여권은 점차 신장되기 시작했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앙리 드 브르통(1896~1966)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여자에게서 그 의미를 끌어낸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여자를 통하지 않고는 이 세계에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여자는 모든 것이다. 이나마도 실은 또 하나의 여성 폄하이며 남성 편의적 여성 미화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남성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장구한 세월이 흘렀던가.

페미니즘운동과 여권 신장을 위한 노력은 다방면으로 전개돼왔다. 1980년대 이후에는 여성박물관이 여성운동의 대표적 흐름이 됐다. 그것은 역사의 수면 아래 잠겨 있던 여성의 역사를 발굴 보전해 현재화하고, 여성의 독자적 표현·활동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양성평등과 인류사 발전에 기여하려는 움직임이다. 여성박물관은 1981년 독일 본에 최초로 설립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제여성박물관협회(IAWM)에 의하면 2015년 현재 건립된 여성박물관은 39곳, 추진 중인 곳이 22곳, 공간이 없는 가상박물관이 9곳, 그 밖에 다양한 전시를 하는 젠더단체 13곳 등 73곳의 다양한 박물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12월 양성평등 역사문화 의식을 확산한다는 차원에서 여성가족부가 서울 동작구 대방동 여성플라자에 국립 여성사전시관을 조성해 운영해오다 2014년 9월 경기도 고양시의 정부 고양지방합동청사로 이전했다.

그러나 박물관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고 국가 차원에서 여성사박물관을 짓자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2013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여성사박물관 건립에 필요한 입법절차가 마무리됐다. 여성사박물관 건립추진협의회는 앞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건립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다. 남녀 공존의 미래 사회를 실현하고 양성평등의 균형 있는 역사관을 확산시키자는 취지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영원하고도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Das Ewig-Weibliche zieht uns hinan)라는 말로 끝난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라는 번역은 오역이다. 괴테는 ‘영원하다’, ‘여성적이다’라는 두 형용사를 각각 명사화한 뒤 두 단어를 복합명사로 조합해 하늘 높은 곳으로 이끌어 올린다고 말했다.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과 말러의 8번 ‘천인교향곡’도 바로 이 말로 끝난다.

괴테를 본받아 말한다면 우리나라는 영원한 것, 여성적인 것 외에 한국적인 것을 찾아서 보전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여성의, 여성을 위한 박물관, 그러나 여성에 의한 박물관이 아니라 남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힘과 정성에 의한 박물관을 지어야 한다. 여성이 여성이 아니려고 할 이유는 없다. 여성은 이제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가 돼야 한다. 여성은 사회적·역사적 지평 위에서 자신을 부단히 창조해 나가야 하는 존재다.

외국의 여성박물관들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가? 이투데이 취재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현장 취재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듣고 운영방식을 알아보기로 했다.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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