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양(梁)의 재상 맹간자(孟簡子)가 죄를 지어 제(齊)로 망명했다. 그를 맞이한 재상 관중(管仲)은 행색이 남루하고 따르는 사람도 셋뿐인 것을 보고 놀랐다. 관중의 물음에 맹간자는 “과거에는 식객이 3000이 넘었으나 이제는 세 사람만 남았다”고 대답했다. 맹간자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아비나 어미가 죽었을 때 내가 장례를 치러 주었고, 나머지 1명은 형이 감옥에 갇혔을 때 힘써 구해 주었습니다.”
관중은 탄식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역시 나라를 혁신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이들의 원한을 샀으니 언젠가 이처럼 곤경에 처할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언제 사람들에게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해주고 여름비처럼 시원하게 해준 적이 있었던가? 앞날이 걱정이로구나”[吾不能以春風風人 吾不能以夏雨雨人 吾窮必矣]라고 했다. 전한(前漢) 말에 유향(劉向)이 편집한 ‘설원(說苑)’의 귀덕(貴德)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춘풍풍인(春風風人) 하우우인(夏雨雨人)이라는 성어가 생겼다. 적절한 시기에 남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특히 하우우인은 중국 4대 기서(奇書) 중 하나인 수호지(水滸誌)의 중심인물 송강(宋江)의 별명 급시우(及時雨)와 뜻이 같다.
관중은 이렇게 탄식했지만 맹간자처럼 고통을 겪은 일은 없었고, 죽음을 앞두고도 제환공에게 아무개 아무개를 멀리할 것을 극력 간언했다. 그의 친구 포숙아는 관중이 한때 적이었던 제환공에게 붙잡혔을 때 적극 천거해 목숨을 구해 주고, 평생 성실하게 도와준 사람이다. 그야말로 관중에게는 하우우인과 같은 존재였지만, 관중은 그가 자신의 후임으로는 마땅치 않다고 냉철한 평가를 잊지 않았던 사람이다.
요즘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려 좋긴 한데, 수해가 난 곳에서는 하우우인의 비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