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식품을 수입하는 외국 수입상이 돈을 버는 구조로 가야 합니다. 한국 식품을 취급하는 사람이 꼭 한국사람, 한국기업일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부임한 지 올해로 4년째를 맞는 김재수(58) 사장이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한국 농업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김 사장은 “지금까지는 한국 농식품을 수출할 때 취급하는 기업도 한국기업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우리 상품을 사 가는 수입상이 반드시 한국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한국 김치를 사 가는 중국 수입업자가 돈벌이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어서는 안 되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향으로 수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러다 보면 한국의 우수한 전통식품에 대해 ‘입맛 들이기(인지도 제고)’를 할 수 있고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한국 농수산식품을 먹게 될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김 사장은 채소류 등 1차 농산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2차 농산물을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가공무역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식품 가공산업 발전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김 사장은 CJ 제일제당, 농심 등 국내 식품 대기업에 대해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자사 글로벌 브랜드 제품이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국내 기업이 R&D와 마케팅에 매진해 국가 브랜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농업행정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김재수 사장과의 인터뷰에서 받은 인상은 자기 분야에 고착되거나 정체돼 있지 않고, 넓은 시야와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33년간 공직에 몸담았지만, 관료주의나 보신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김 사장은 ‘감성시대’나 ‘트렌드’, ‘국민의 눈높이’와 같은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글로벌 시대에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과거와 같이 대응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겪고 나서 김 사장은 재난과 안전 대응 시스템에 대해 고민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서 그는 직원들과 향후 안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생각 끝에 야간에 화재가 발생하면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김 사장은 “각 사무실 공간마다 10미터 정도의 밧줄을 배치했다”며 “유사시에 밧줄이 있으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기에 화재 발생시 사용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가 새로운 아이디어나 정책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는 이 같은 발상이 작용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aT가 2014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준정부기관 최고등급인 ‘우수(A등급)’를 받은 것에 대해 그는 “농산물 수급안정과 유통구조 개선 등 핵심 과제 영역에 집중했다”며 “핵심사업 중심으로 기능을 강화하고, 현업 부서 위주로 자원을 배분해 현장 중심 조직체계를 운영한 것이 성과를 이끌었다”고 자평했다.
aT의 현안 과제인 유통, 수출, 식품산업 발전, 농업의 6차 산업화, 지역사회 공헌, 고용 촉진 등은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들이다.
aT는 지난 2013년 방만경영 중점관리 대상기관으로 지정된 후 방만경영 정상화 이행에 대한 직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노사 양측간 적극적인 소통으로 경영정상화 목표과제 13건 이외에 자체 발굴 3건을 더해 총 16건에 대한 개선을 완료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성과 창출과 책임 경영 강화를 위해 완전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aT 고유사업에 대한 임직원 모두의 역량을 극대화한 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김 사장은 설명했다.
농업의 6차 산업화와 관련해 김 사장은 “우리 농업 구조는 생산 이후의 저장, 가공, 유통, 수출 분야 등의 고부가가치 산업보다는 생산 쪽에 모든 정책과 예산, 인력, 인프라가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생산 중심의 먹는 농업에서 벗어나 기능성농업, 치료농업, 관광농업, 수출농업 등 미래형 6차산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aT는 중국 온라인시장에서 한국 농식품 진출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최초로 B2B 한국식품 전용관을 개설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알리바바 그룹의 B2C사이트인 ‘티몰(T-mall)’에 한국관을 개통해 중국 소비자들이 온라인상에서 손쉽게 한국 식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 수출 시장을 개척하기까지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김 사장은 “14억 거대 중국 농식품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세일즈를 위한 해외인력 확충이 절실하다”고 말한 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거대한 중국 시장이 열리는 상황에서 aT 중국지사 내 해외파견 인력이 많지 않아 수출 세일즈를 위한 기회를 많이 놓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중국 내 각 권역별 지사와 인력 확충을 통해 한·중 FTA의 위기를 기회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aT는 농산물 유통경로 최소화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 사장은 ‘농산물유통구조개선 종합대책’ 3년차를 맞아 도매시장의 경우 감독기능을 강화하고, 물류 효율화 사업을 추진해 물류비 절감 등 다양한 지원을 해나갈 계획이다. 직거래 사업은 소비자 만족도가 높은 로컬푸드 직매장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귀농·귀촌 인구 증가와 농촌의 ICT 기술 접목 확대 추세에 맞춰 맞춤형 직거래 사업을 발굴해나갈 방침이다.
우리 농업에 산재해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김 사장은 수출농업과 국내농업의 ‘투트랙’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농업 측면에선 △생산기반 구축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수급조절 △식품산업 육성 △ICT 융복합 등을 지속 추진하면서 수출농업에서는 △수출인프라 확대 △수출유망품목개발 △해외마케팅 등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해마다 반복되는 국내 농산물 가격 등락은 FTA 영향일 수도 있고, 국내 생산 과잉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한 것”이라며 “농업은 국내 생산과 소비 등의 발전뿐 아니라 해외시장의 변화를 고려한 다각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aT는 농식품 관련 미래 인재 육성프로그램인 ‘얍(YAFF)’을 통해 대학생들의 농업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농식품 수출업체들과의 일자리 매칭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얍(YAFF)에 대한 식품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식품기업 인턴으로 채용된 일도 있다. 향후 국내 식품기업의 인력난과 대학생의 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며 “미래 우리 농업을 이끌어 나갈 농식품 분야 인재양성의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준정부기관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창의와 혁신, 변화를 강조하는 조직 문화를 통해 농업분야에서 창조경제 성과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수도권 고객의 불편과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설치한 ‘aT 창조마당’을 비롯해 일반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헬로(Hello) aT 북카페’, 식품 수출업체를 위한 바이어 미팅 공간인 ‘비즈니스 라운지’ 등 참신한 아이디어가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aT는 지난해 한·중 FTA 등 대외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을 재정비하는 등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는 공공기관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면서 “광주전남혁신도시인 나주로 본사를 이전함에 따라 지역 동반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전남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공공기관으로 자리매김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재수 사장은? 행시 출신… 농림부서 33년 ‘골수 농림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