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48)다. 한국영화계에서 그의 존재를 단적으로 규정해줄 두 개의 설문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CGV가 지난 1월 23일부터 2월 5일까지 2014년 상하반기 각각 2회 이상씩 CGV를 이용한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배우/감독 선호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한 925명 중 28.4%가 믿고 보는 배우로 송강호를 지목해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맥스무비 영화연구소가 관객 1만447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 11~12일 동안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연기 잘하는 남자 배우 1위로 선정된 스타도 송강호다.
흥행력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송강호가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은 ‘사도’에서 영조역을 맡았다. ‘사도’에서 송강호의 영조는 어떤 화두를 던지며 한국 영화의 지평을 확장할까. 송강호의 영조는 흥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당연한 질문이다.
430억 원이라는 한국 영화사상 최대 제작비, 할리우드 스타의 출연, 스타 감독 봉준호의 작품, 자본주의와 계급 등 거대 담론의 논쟁이 된 영화. ‘설국열차’, 관상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권력과 인간의 본질을 드러낸 사극.‘관상’, 인권과 법이 공권력과 초법적 권력 앞에 짓밟힌 1980년대 암울한 시대의 한 인권 변호사 삶을 다뤄 개봉전후 논란과 논쟁이 일었던 영화 ‘변호인’의 중심에 송강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송강호를 향해 ‘설국열차’크리스 에반스는 “난 한국어를 못하지만 함께 촬영할 때마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배우인지 느낄 수 있었다”고 했고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 틸다 스윈튼은 “송강호는 현재 살아있는 배우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 한다”는 극찬의 헌사를 했다.
외국 배우뿐만 아니다. 그와 작업을 했던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감독 등과 전도연 이병훈 김혜수 등 동료 연기자들은 송강호에 대해 “연기의 한계가 없는 연기를 너무 잘하는 배우”라는데 인식을 같이한다.
송강호는 1996년 영화 데뷔 이후 줄곧 관객과 전문가들에게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의 주인공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영화보다 먼저 연극 무대에서 그를 만난 관객들은 명명했다. “연기력 하나만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기며 감정의 파장을 일으켜 감동을 주는 연기자”라고.
시간이 흘러도 그 앞에 여전히‘연기력’‘연기파’라는 수식어가 조건반사적으로 붙는다.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 하더라도 작품에 따라 연기력 편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송강호는 여전한 현재진행형의 연기파 배우다.
‘연기력이 뛰어난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을 던지자, “과찬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과한 표현이에요. 그런 수식어를 달 수 있게끔 노력하고 노력 할 뿐이죠. 저 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흥행을 꿈꾸고 연기력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감독과 작품이 좋고, 배우 스스로 좋을 때 흥행에 성공하는 것 아닐까요.”송강호가 특유의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겸연쩍어 한다.
송강호를 읽는 강력하고 유일한 키워드는 ‘연기력’이다. 일반 관객은 송강호를 연기력 평가에 첫 손가락에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동료 연기자와 전문가 평가 역시 다르지 않다. “송강호 선배는 정말 무서웠다. 연기를 잘해서 무시무시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동원) “송강호는 냉정하고 잘 계산된 연기를 보여 준다”(박찬욱 감독) “송강호 선배는 예측불허의 타고난 감각이 있다”(문소리) “송강호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배우이자 사랑하는 배우다”(봉준호 감독)… 대종상, 대한민국영화대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쓴 것 역시 송강호가 어떤 문양의 배우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1, 2012년 타의 추종을 불허한 연기력으로 흥행보증수표라는 부동의 평가를 받고 있던 송강호에게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송강호의 출연 영화라고 믿기 어려운 성적이었다. 그가 주연으로 나선 ‘푸른 소금’ ‘하울링’ 등이 연이어 흥행에 참패한 것이다. ‘푸른소금’의 경우, 77만만명이라는 관객 동원에 그쳐 송강호 영화의 흥행사에 일대 오점을 남겼다. 이 때문에 일부 대중매체와 전문가, 관객은 ‘송강호가 흔들리고 있다’‘송강호의 시대는 갔다’‘흥행보증수표 송강호, 흥행부도수표로 전락하나’라며 송강호 흥행실패에 대해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그런데 이 역시 역설적으로 송강호가 한국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얼마나 성공한 스타인지를 잘 보여줬다.
송강호는 자신에 대해 제기된 위기론에 대해 “지금이나 그때나 저는 똑같아요. 배우는 사람을 연구하고 표현하는 직업이며 제 삶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안 좋고, 아쉬운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는 법이죠. 배우의 삶도 똑같습니다. 늘 흥행하는 작품만 할 수는 없어요. 실패도 저의 경험이에요. 그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순간이 ‘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흥행에 성공한다고 제 인생이 달라지지 않아요. 전 배우로서 제 일을 할 뿐이죠.”기복 없이 그리고 흔들림 없이 영화 안에서나 영화 밖에서 보여주는 송강호의 한결같음은 그가 주연한 영화만으로 6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파워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성과나 평가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배우가 무슨 짓을 하건 이것이 내겐 정답이고 절실한 행위라고 믿으면 수많은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몰입하고 수긍하는 연기가 나오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면 한 사람에게도 진정성을 전달하지 못하는 연기를 하게 된다”는 생각으로 송강호는 다시 일어서 2013년을 그의 해로 만들었다.
연예계와 대중문화산업 분야는 실력만으로 성공하기가 힘들다. 대중이 선호하는 이미지를 창출해야 하고 막강한 홍보 마케팅으로 인지도와 유명성도 확보해야 한다. 대중의 취향과 기호에 부합하는 트렌드도 창출해야 한다. 그래서 연기 못한 배우도, 노래 못하는 가수도 스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송강호는 홍보 마케팅이나 대중이 선호하는 이미지 창출이 아닌 오롯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력과 캐릭터 창출력만으로 연기자로서 대성공을 일궜다.그리고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흥행성과를 이끌었다. 그래서 그의 흥행성적은 진정으로 값진 것이다.
대다수 배우들이 흥행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는 예능 프로그램에 앞 다퉈 출연해 영화에 대한 직간접 홍보를 한다. 그런데 송강호는 자신이 주연한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도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몇 안 되는 스타 중 한사람이다.
송강호는“때로는 유머러스한 작품에 출연하고 코믹한 연기를 하니 예능도 잘 할 것 이다 라는 생각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데 착각입니다. 제가 내성적 성격이 강해서 예능은 맞지 않아요. 내성적이라 시청자와 예능 프로그램을 위해서 안 나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출연을 하지 않는 것 아니 못하는 것이지요. 대신 영화를 통해 연기로 보여 주겠습니다”고 말한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하지 않는 이유 속에 배우의 본질과 송강호의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시나리오상의 존재하는 대사가 송강호의 신체를 거치면 일상의 언어가 되고 시나리오의 명기된 표정과 액션도 그의 육체를 통과하면 일상의 생활과 삶이 된다. 그 정도로 송강호는 빼어난 연기력의 배우다.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력을 가진 배우로 서기까지의 과정은 어땠을까.
송강호는 영화나 드라마 연기자들의 중요한 충원 통로 중 하나인 연극무대 출신이다. 1991년 ‘동승’을 시작으로 ‘날아라 새들아’ ‘국물 있사옵니다’ ‘심수일과 이순애’ ‘비언소’ 등 연극 작품을 하면서 탄탄한 연기력을 쌓았다.
그리고 1995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단역으로 영화배우로 첫선을 보였다.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를 거쳐 송능한 감독의 ‘넘버3’로 소위 말하는 스타덤에 올랐다. “배 배 배 배신이야”라는 대사로 잘 알려진 ‘넘버3’에서 불사파 두목 조필역을 송강호는 강렬하게 그러면서도 너무 일상적으로 연기해 관객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 잡았다. 이후 ‘반칙왕’ ‘쉬리’‘공동경비구역’‘효자동 이발사’ ‘살인의 추억’ ‘의형제’‘밀양’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 ‘박쥐’ 등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흥행작과 문제작을 통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송강호만의 독자적 배우의 영역을 구축했다.
연예기획사의 홍보 마케팅이나 막강한 배경, 운, 이미지, 외모 등 연예인의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그 어떤 요소보다도 훨씬 강력한 송강호만의 연기력을 갖추면서 배우로서 가장 바람직한 성공의 철옹성을 쌓고 있다.
중2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 연극영화과를 지망했다가 떨어지고 다니던 대학의 방송연예과를 중퇴한 뒤 극단 연우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송강호는 실력(연기력)만으로 가장 이상적인 그리고 바람직한 성공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배우다.
2013년 흥행대박을 기록했던‘설국열차’‘관상’‘변호인’에서 송강호는 어떻게 연기력 하나로 관객의 가슴과 눈을 부여잡는 배우가 됐는지를, 그리고 연기력 하나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배우가 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송강호는 말했다. “지금 40대 중반이니까 안주하려는 마음이 가끔씩 든다. 흥행이 보장된 영화, 안전한 영화가 자꾸 보인다. 그런 선택을 안 하게끔 스스로 경계해야 하는 지점에 온 것 같다. 배우로서 큰 숙제다.”
송강호는 자신에게 부여한 배우로서의 이같은 과제를 익숙한 장르와 캐릭터, 작품 그리고 연기 스타일의 안주 대신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과 연기력 확장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과제를 해결하는 작업이 비록 어려움과 실패의 두려움이 존재할 지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그 것이 관객이 바라는 송강호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런 송강호가 ‘사도’에선 어떤 영조를 보여줄까. 벌써부터 기대와 관심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