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규천(以管窺天)처럼 견문이 좁은 것을 일컫는 말을 더 살펴보자. ‘장자’ 추수(秋水)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위(魏)의 공자 모(牟)가 제자백가의 하나인 명가(名家)의 학자 공손룡(公孫龍)에게 장자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공손룡은 총명하고 학식이 풍부해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데 장자의 학설을 알고 난 뒤 놀라서 “저의 의론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지식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다음은 모의 대답이다.
“그분은 아래로는 땅 속 깊이 발을 들여놓고 위로는 하늘 끝까지 오르려 하고 있소. 남북 방향도 없이 거침없는 모습으로 사방으로부터 아무 구속도 받지 않은 채 짐작할 수 없는 경지에 침잠하고 있는 사람이라오. 그러면서 동서도 방향도 없이 어둡고 깊은 경지에서 모든 것을 자유로이 소통시키는 대도로 돌아가려 하고 있소. 그런데 그대는 정신없는 모습으로 하찮은 관찰을 통해 그를 찾으려 하고, 쓸모없는 변론으로 그를 잡으려 하고 있구려.”
이어 모는 결정적으로 한방을 먹인다. “이는 곧 붓 대롱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송곳을 땅에 꽂고 대지의 깊이를 재려는 것이니 또한 작다 아니하겠는가? 어서 돌아가시오.”[是直用管窺天 用錐指地也 不亦小乎 子往矣]
여기 나오는 용관규천(用管窺天), 붓 대롱을 써서 하늘을 엿본다는 것은 이관규천과 같은 말이다. 이관궁천(以管窮天)도 있다. 이런 말에서 관규(管窺) 관견(管見)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공자 모의 말을 종합한 성어로 ‘붓 대롱으로 내다보고 송곳이 가리키는 곳을 살핀다’는 관규추지(管窺錐指)가 있다. 줄여서 추지(錐指)라고 한다. 관중규표(管中窺豹)라는 말도 있다. 붓 대롱으로 표범을 보면 얼룩점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진서(晉書) 왕헌지전(王獻之傳)에 나온다. 왕헌지는 왕희지의 일곱째 아들이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