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은 왜 '비싼 삼성물산' 샀나…투자 적절성 논란

입력 2015-07-23 06:28 수정 2015-07-23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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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합병에 일제히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진 국내 연기금이 정작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삼성물산 간 분쟁이 한창일 때 삼성물산 주식을 집중 매수하고 제일모직 주식을 대량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합병 발표 이후 주가 흐름이 제일모직 주식을 사고 삼성물산 주식을 파는 것이유리한데도 연기금은 정작 정반대의 행동을 보여 투자 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일 전망이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가 비율은 엘리엇이 지분 보유 사실을 공개한 6월4일부터 주총 전날인 7월16일까지 줄곧 합병비율로 정해진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 범위를 벗어나는 흐름을 나타냈다.

엘리엇의 공세에 몰린 삼성물산이 전격적으로 자사주 처분 계획을 밝힌 6월10일에는 그 비율이 1대 0.42까지 치솟으며 삼성물산의 '고평가' 상황이 지속됐다.

그런데 이 사이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연기금은 삼성물산 주식을 1천250억원어치 순매수한 반면 제일모직 주식은 1천197억어치 순매도했다.

합병 법인의 지분을 계속 보유하려면 상대적으로 싸진 제일모직 주식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연기금은 그 반대 방향으로 매매를 한 것이다.

일례로 공시 내용을 보면, 국민연금은 6월3일을 기준으로 9.92%(우선주 포함)이던 삼성물산 지분을 6월30일 기준으로는 11.61%까지 늘렸다.

이 사이 시장에서는 삼성물산의 고평가 상황을 활용, 제일모직 주식을 사고 삼성물산은 공매도하는 '무위험 차익거래'가 유행하기도 했다.

또 일반적으로 연기금과 비슷한 투자 패턴을 보이는 투신권은 이 기간 연기금과 반대로 '교과서적인' 투자를 해 대조를 이뤘다. 투신권은 삼성물산을 144억원어치 순매도하고 제일모직은 4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업계에서는 연기금이 표면적으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합병 무산에 '베팅'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삼성물산 주식을 산 것은 사실 합병이 부결됐을 때 주가가 크게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라며 "국민연금의 자금 위탁을 받은 자산운용사들이 삼성물산 주식을 꽤 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연기금은 엘리엇의 공격 후 주가가 고점일 때 삼성물산을 대량 매집했다가 주가가 꺼져 현재 적지 않은 평가 손실까지 입게 되면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엘리엇의 공격이 시작되고 나서 최고 7만6천100원까지 오른 주가는 합병안이 통과된 이달 17일 이후 크게 하락해 6만100원까지 밀렸다. 결국 이 기간에 삼성물산 주식을 대량 매집한 연기금이 상투를 잡은 셈이다.

범위를 조금 넓게 잡아 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이 발표된 5월26일부터 7월22일까지 연기금은 삼성물산 주식을 2천277억원어치나 순매수했다.

합병 발표, 엘리엇과 분쟁 등 주가 상승 재료가 당분간은 소멸된 상황이어서 연기금이 수익률을 회복할 때까지는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수탁자로서의 의무를 해야 할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국민으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할 가능성에 대해 상당히 둔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국민연금을 상대로 한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연기금의 책임을 환기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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