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은 9세 입단에 통산 160회 우승, 국내 타이틀 세 차례 전관왕 등 깨지지 않는 기록의 보유자다. 바둑황제, 전신(戰神), 화염방사기, 조제비로 불리는 그의 바둑을 ‘부드러운 바람, 빠른 창’이라고 갈파한 사람이 있다. 조치훈은 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바둑을 평정한 기사다. 기성 명인 본인방을 동시에 석권하는 대삼관(大三冠)을 네 차례 차지한 바 있다. 특히 목숨을 걸고 두는 치열한 승부정신을 보여준 휠체어대국으로 유명하다.
‘전설의 귀환’이라는 두 기사의 대국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일요일이었던 26일, 한국 현대바둑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12년 만에 마주 앉은 두 기사의 승부는 조훈현의 시간승으로 끝났다. 조치훈은 마지막 초읽기를 할 때 계시원의 “열!” 소리와 동시에 돌을 놓았다.
싸움이 한창 급한 국면이어서 승부가 궁금했지만 바둑은 그것으로 끝났다. 친선대국인 만큼 실수를 양해해 주고 계속 두도록 운영의 묘를 살려야 했다고 아쉬워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조치훈의 패배 인정은 당연한 일이었고, 심판인 김인 9단의 ‘조훈현 시간승’ 선언도 당연했다. 계시원이 “마지막입니다”라고 알려주며 열을 세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을 흠잡을 수는 없다.
바둑의 가장 큰 특징은 공정한 룰의 게임이라는 점, 인사로 시작해 복기로 끝난다는 점이다. 프로기사의 바둑은 복기까지 해야 마무리된다. 승패를 떠나 겸손하고 담담하게 복기를 하며 감상과 견해를 교환할 수 있어야 진정한 기사다. 두 사람은 꽤 길게 복기를 했고, 대국 후의 인터뷰에서 많은 말을 했다. “바둑은 이기고 승부를 져주는 대가(大家)”, “목숨을 걸고 두는 치열함”(조훈현의 조치훈 칭찬), “바둑이 약해지니 사람이(내가) 좀 훌륭해지는 것 같다”, “조훈현 9단의 기재는 나의 백배이지만 노력은 내가 백배”(조치훈의 언급), 이런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1인자라고 생각하는 조치훈 9단의 경우 전보다 더 바둑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시간패에서도 드러났듯 나이가 들면 머리가 느려지고 손이 늦어지지만 소질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지금 바둑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 기사들인가. 누가 쓴 글인지 생각나지 않고 정확한 문구도 잊었지만, 언젠가 조훈현과 조치훈 둘이서 이런 대화를 했다고 한다. “요즘 기사들은 너무 승부에만 집착해 기도(棋道)가 쇠퇴해간다. (엄격한 기도 훈련을 받고 자란) 우리 같은 세대가 더 잘 해야 한다.”
이들이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기계는 건강할 수 있고, 젊은 기사들이 본받고 따르게 된다. 잘 한다는 말이 성적만을 뜻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프로기사를 ‘사범’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기력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젊었을 때도 선배들은 ‘이기는 것만 생각하는 후배들’을 보며 이와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다. 바둑이란, 인생이란,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세대의 자연스러운 교체와 전통의 승계 속에서 사회는 어떤 의미로든 변화하고 나아져 간다.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바둑은 인생과 같으니 교훈과 지혜를 얻으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바둑이 인생만의 축소판일까? 넓게 보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바둑에서는 묘수를 세 번 내면 진다. 묘수가 필요해진 이유는 절체절명의 궁지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궁지에 처하지 않도록 바둑도 인생도 사회도 정석을 따라야 한다. 더 좋은 것은 “정석은 외우되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일탈을 위한 망각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재창조의 과정이다.
바둑은 복기를 통해서 는다. 광복 70년은 지나온 격동의 세월을 복기하는 시기다. 그러나 우리는 복기에 익숙하지 않다. 복기를 통한 얻음과 깨달음을 다음 일에 활용하지도 못하고 있다. 우리는 공정한 룰을 지키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고 복기도 하지 않는 대국을 하며 무턱대고 살아왔다. 기본에 충실한 정석과 냉엄한 복기의 중요성을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