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정조 2년(1778) 1월 5일의 기록을 보자. 정조는 유신(儒臣) 송덕상(宋德相) 김양행(金亮行) 김종후(金鍾厚) 유언집(兪彦鏶)에게 함께 일하자고 돈소(敦召)하고 이르기를, “해가 바뀌었는데도 나의 공부는 날로 진보가 없고 덕업(德業)이 날로 새롭게 되지 못했다”며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조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나의 한 몸은 만기(萬機)가 연유하게 되는 바이고 온갖 책임이 모여 있는 바이다.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홀만해져 척연(惕然)하기에 게을러지면, 털이 쉽게 타버리듯 하고 바다가 금방 탕연(蕩然)해지듯 하게 된다.”
그러니 도와달라고 그토록 부탁했건만 돌아보지 않으니 몹시 답답했던 것 같다. 선비는 나가야 할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알아야 하지만 “옛적의 이윤이나 여상(강태공)과 같이 고상한 선비들도 되도록 독선기신(獨善其身)의 뜻을 돌려 징소(徵召)하는 예의에 응하지 않는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오지 않는 것은 자신의 예절이 부족하고 성의가 신임받지 못하는 소치일 것이기에 얼굴이 붉어져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정조는 그러나 “현자를 부르는 성의와 예절은 근간(懃懇)하지 못하다 해도 ‘잘 다스리기를 바라는 지기’[求治志氣]는 나 스스로 게으르지 않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윤음(綸音)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너희들이 목마른 사람과 같은 나의 소망을 생각해 보고 즉시 함께 조정에 나와 도움을 구하는 내 뜻에 부응한다면 이보다 큰 다행이 없겠다. 너희들은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라.”[爾等念予如渴之望 共卽造朝 以副予求助之意 則甚大幸也 爾等念之念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