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어디로]롯데家 ‘왕자의 난’ 재구성…숨가빴던 5일의 기록

입력 2015-08-0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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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장남의 권좌 회복 시도에 친부까지 해임한 차남…주주총회, 신동빈 회장 귀국에 촉각

롯데그룹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의 서막은 일본에서 부터 시작됐다. 지난 28일 일본의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일본 롯데홀딩스가 28일 오전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신격호 대표이사 회장을 전격 해임했다고 보도했다. 이사회는 롯데창업자인 그를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기로 했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국내 언론들은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한 배경을 알기 위해 이날부터 취재진을 꾸려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신격호 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7월 27일 : 장남의 거사(擧事)…신동빈 회장 해임 위해 전세기 띄워

오전 8시. 신 총괄회장은 자신의 집무실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스위트룸을 휠체어를 타고 나섰다. 장남이 비밀리에 마련한 도쿄행 전세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비행기에는 장남과 장녀인 신영자 이사장,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대행도 동행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신 총괄회장은 롯데홀딩스를 찾아 자신을 제외한 일본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했다. 이날 해임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는 신동빈·쓰쿠다 다카유키 대표이사 부회장이 포함돼 있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에서 부회장과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된 후 신동빈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 대표를 실질적인 경영자로 내세웠던 것과는 반대되는 인사다. 하지만 해임 직후 신 총괄회장은 해임한 쓰쿠다 사장에게 “잘 부탁한다”라는 말을 건넸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일본 롯데 관계자들은 술렁였다. 해임지시가 맞냐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계열사 업무를 챙기며 일본에 머물러 있던 신동빈 회장은 28일 오전 긴급 이사회를 열고 신 총괄회장의 27일 이사 해임 결정이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불법적인 사항이라면서 아버지 신 총괄회장을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에서 해임했다. 아버지에 마지막 존경의 표시였을까? 이사회 구성원이었던 신동빈 회장은 아버지의 대표자격 박탈 결의에 투표하지 않았다. 27일 장남의 거사는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그는 반격의 카드를 준비하며 귀국을 서두르고 있었다.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이 28일 오후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롯데그룹 2세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창업주이자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을 앞세워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로 신 총괄회장은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 경영일선에서 사실상 퇴진하게 됐고, 롯데그룹은 신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 회장의 2세 경영체제로 전환했다.(사진=연합뉴스)

◇7월 28일 : 빈 손으로 돌아온 신격호 총괄회장

28일 롯데그룹은 27일 해임 사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놨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을 비롯한 일부 친족들이 고령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무리하게 일본으로 모시고 가, 일방적으로 롯데홀딩스 임원 해임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신 총괄회장의 대표이사 해임과 명예회장 추대에 대해서는 “경영권과 무관한 분들이 대표이사라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법적 지위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고, 신격호 총괄회장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신동빈 회장의 한일 통합경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실상 신 전 부회장의 거사가 하룻밤 쿠데타로 끝나 버리는 순간이었다.

이날 밤 신 총괄회장은 하루 만에 귀국했다. 김포공항에 진을 치고 있던 취재진들은 “형제 분들 이렇게 된 거 알고 계십니까”,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라는 물음에 입을 굳게 닫았다. 취재진과 경호원 등이 몸싸움을 벌이면서 일대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그는 자신이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아들에 의해 해임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고령에 2번의 비행이 힘들었는지 30일 장남이 전달하고 나서야 인지했고, “(신 회장을) 가만 놔둘거냐”고 장남에 물었다.

앞서 신 회장은 “기업 가치가 가족 문제에 흔들려서는 안된다”며 조직 안정에 나섰다. 하지만 롯데 구성원들은 “승계에 대해 국내 재벌기업 중 가장 좋은 선례를 남길 것으로 기대했는데 참담한 심정이 든다”고 고개를 떨궜다.

◇7월 29일 : 장남의 귀국 그리고 반전의 예고

29일 오전 주식시장은 출렁였다. 형제간 경영권 다툼에 형제간 비슷한 지분을 가진 롯데 계열사들의 주가가 뛰기 시작한 것이다. 경영권 분쟁 뉴스는 주식시장엔 호재로 작용할 때가 많다.

이날 오전 롯데그룹 주변에서는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인 장남이 귀국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포공항엔 오후 1시 이전 부터 카메라가 장사진을 쳤고 취재기자들도 삼삼오오 모여 그가 모습을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오후 10시를 넘어서야 도착했고 기자들의 물음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100여명의 취재진의 등장에도 긴장하지 않은 그는 입국 내내 미소를 띄며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여유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미 일본에서 형제간 경영 다툼에 대한 인터뷰를 마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사의 윤전기는 그날 밤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신격호 회장의 의중은 자신에게로 향해있다는 내용이었고, 차남에게는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내용의 인터뷰였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둘째부인이자 신동주, 신동빈 형제의 어머니인 시게미쓰 하쓰코(重光初子) 여사가 30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뉴시스)

◇7월 30일 : 장남의 대대적인 여론전, 니혼게이자이와 KBS 인터뷰…그리고 어머니의 입국

이날 아침 편집국에 출근하자마자 국제부가 술렁거렸다. 장남이 이번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어제 귀국하기 전 니혼게이자이신문과 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그는 동생인 신동빈 회장 등을 해임한 것은 자신이 꾸민 ‘쿠데타’가 아니며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대응에 대해서는 조만간 열릴 주주총회에서 이사 교체를 추진할 것이라면서도 주총 개최도 이사회에서 결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기사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일본에 가기 전부터의 상황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었다. 1월말 롯데홀딩스 부회장직에서 해임된 배경을 묻는 질문에 그는 “내가 진행했던 투자가 예산를 초과해 회사에 손해를 줬다는 이유에서다. 손해는 수억 엔 정도였지만 아키오와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등이 왜곡된 정보를 아버지에게 전달해 영구 추방에 가까운 상태가 돼 버렸다”고 털어놨다. 이후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며 아버지의 마음을 돌린 내용과 “아버지가 일관되게 이 인간(신동빈)을 쫓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동생을 향해 품고 있는 감정의 골 깊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신 회장이 동빈에게 등을 돌린 이유로 그는 “중국 사업을 비롯해 한국 롯데의 실적을 (아버지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아키오가 한일 두 곳의 경영을 다 본다는 신문 기사가 나왔지만 아버지는 전혀 몰랐다. 그래서 18일 아키오를 일본 롯데 그룹 직책에서 해임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런데도 아키오는 아버지에게 얼굴도 보이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시받았단 생각에 분노해서는 직접 가서 해임 통고를 하겠다며 일본으로 가셨다.”고 설명했다.

롯데 복수의 관계자들도 “6월인가, 7월부터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이나 그의 측근 인사들을 철저히 차단했다”고 말했다.

그날 오후 신격호 총괄회장의 두번째 부인이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의 어머니인 시게미츠 하츠코씨(重光初子·88)가 입국했다. 시아버지의 제사를 치르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녀는 다음날 예정된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형제간 다툼이 심해지면서 중재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의중은 정해져 있는 듯 보였다. 신 전 부회장은 이날 KBS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일본행 전날인 26일 작성된 해임 지시서를 공개했다. 문서에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이사들의 해임 명령이 적시돼 있었고, 신 총괄회장이 친필로 사인을 한 부분도 확인됐다. 신 회장의 해임은 아버지 뜻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동생인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이 31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신선호 사장은 이날 부친인 신진수씨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노진환 기자 myfixer@)

◇7월 31일 : 롯데가 제삿날, 가족회의 없었다

롯데 일가가 이날 밤 신 전 부회장의 성북구 성북동 자택에서 신격호 총괄회장 선친의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계기로 자연스러운 가족회의를 기대했지만 신격호 총괄회장과 부인, 그리고 장녀인 신영자 이사장이 참석하지 않아 경영권 문제가 다뤄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앞서 한국으로 귀국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셋째 동생인 신선호 사장은 신 총괄회장이 오랜전부터 장남을 후계자로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신격호 회장이 차남에게) 회사를 탈취당하고 있다", “후계는 장남으로 알고 있다”고 신 전 부회장의 편을 들었다.

가족간 대화와 타협이 불발로 그치면서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동빈 회장 쪽은 이미 이사회를 통해 해임된 신격호 총괄회장을 앞으로 주주총회를 열어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겠다면서 주주들에게 안내장을 발송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주주들을 포섭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추측만 나돌 뿐 신동빈 회장의 귀국 소식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주총으로 치달을 경우 형제간 표대결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재계에서는 표대결로는 서로 상처만 입고 회사도 온전치 못할 것이라며 일본 내 계열분리를 통해 다툼을 끝내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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