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어디로] 순환출자 416개 중 10개 끊는 데만 4조… 설계자 신격호 ‘자승자박’

입력 2015-08-0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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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측“오너가 경영권 행사 지장”해명…막대한 해소 비용에 진전 없어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5일 페이스북에 올린 74개 롯데그룹 계열사의 출자구조도. 롯데그룹 계열사 간 순환출자가 반도체 회로판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장 교수는 “이 그림을 그리는 데 1주일이 걸렸다”며 “복잡한 이런 구조를 설계한 신격호는 神격호”라고 비꼬았다.
롯데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가 ‘자승자박’하는 덫이 됐다. 형제간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민낯을 드러낸 전근대적 황제경영을 가능케 한 주범으로 찍힌 것이다. 2.41% 밖에 안되는 지분으로 400개가 넘는 순환 고리를 이용해 그룹 전체를 장악하는 형태다. 그나마 2013년 9만533개에 달했던 순환출자 고리가 현재 416개로 줄었지만, 롯데는 해외계열사와 엮인 지배구조의 복잡함과 수조원에 달하는 비용 때문에 더 이상 줄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 “오너가의 경영권 행사 때문에 못 줄인다” = 작년 8월 롯데는 9만5033개나 됐던 순환출자 고리를 142개로 줄였다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롯데의 자료를 그대로 보도자료로 배포했지만 롯데가 허위자료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망신살을 샀다.

단단히 찍힌 롯데는 지난 5월 공정위가 순환출자 고리를 더 줄이라고 요구하자 “오너가의 경영권 행사에 지장이 있어 더이상은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경영권 다툼으로 문제가 불거지자 공정위는 롯데 해외계열사까지의 순환고리와 지분구조 등을 요구했고 허위로 자료를 요청할 경우 신격호 총괄회장의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면서 엄포를 놨다.

롯데가 순환출자 고리를 9만여개에서 400여개로 줄일 수 있었던건 2013년 중반 이후 계열사간 합병과 지분 이동 때문이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합병으로 계열사 1개가 줄어들자 순환출자고리 수천개가 사라지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롯데가 그만큼 복잡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연결시켜놨다는 방증이다.

당시 롯데는 롯데역사와 롯데닷컴 등이 보유 중이던 롯데건설 지분 4%를 호텔롯데에 넘겼고, 대홍기획과 롯데리아는 롯데알미늄 지분 5.1%를 전량 롯데케미칼에 매각했다. 또 롯데상사는 롯데리아 지분 0.9%를 롯데칠성음료에 넘겼고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제과 등이 보유 중이던 롯데상사 지분 총 12.7%를 롯데쇼핑으로 이동시켰다.

2014년 초 대기업 집단계열사 간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롯데는 대대적인 정리에 나섰지만 더이상 진전은 없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집단 전체 순환출자 고리수(459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롯데가 공정위와 여론의 압박에도 줄이지 못하는 건 오너가의 경영권 행사에 문제가 됐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설득력 있다”며 “복잡한 지분구조와 형제간 다툼으로 법적 강제 없이 줄일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거미줄 순환출자, 해소하려면 수조원 들어 = 오너가의 경영권 행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 외에도 롯데그룹이 순환출자 고리를 더이상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건 막대한 비용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으려면 계열사끼리 주식을 사고 팔거나 서로 합병해야 하는데 해소 비용이 수조원에 달해 단기간 정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제한기업 집단으로 지정한 51개 그룹 중 순환출자고리가 있는 12개 그룹, 39개 순환출자고리의 해소 비용을 추산한 결과 총 38조45억원에 달했다. 이중 롯데그룹은 주요 고리 10개를 끊는 비용만 3조8663억원으로 추산됐다. 남아있는 416개개를 끊으려면 천문학적인 해소 비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주주들의 이익을 고려해 적당한 시점을 잡아 순환출자 해소를 진행하고 있다”며 “비용처리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자본을 확보하면서 차근차근 개선해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롯데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순환출자 고리만 끊어내서는 소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그걸(순환출자를) 단순히 끊는다고 개혁이 아니다”며 “국내 공정거래법으로는 롯데의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할 방법이 없는 만큼 국민연금 등 주주를 비롯한 시장 이해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환경을 조성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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