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와 석유화학 업계는 올 들어 드라마틱한 실적 반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알래스카의 여름’처럼 반짝 호황에 그칠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유가 하락과 정제마진 감소에 사상 최대 수준의 적자 행진을 벌인 정유사들은 올해 상반기 보란 듯이 호실적을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은 올 상반기에만 1조309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특히 2분기에 기록한 9879억원이라는 수치는 2011년 1분기의 1조3562억원 다음으로 많은 분기 실적이다. 지난해 37년 만에 적자를 본 후 1년 만에 실적 역전에 성공했다.
에쓰오일(S-OIL) 역시 올 상반기에 8511억원(1분기 2381억원, 2분기 613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지난해 부진을 만회했다.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매출액 2조8523억원, 영업이익 22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489.5%나 증가했다. 8월 중순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는 GS칼텍스는 2분기 6000억원 중반대를 기록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화학업계도 올 상반기에 만족할 만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달 17일 2분기 실적을 공개한 LG화학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563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했다. LG화학의 영업이익이 5000억원을 넘은 것은 2013년 3분기가 마지막이었다.
또 롯데케미칼은 올 2분기 영업이익이 6398억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은 3조1786억원으로 16%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658.5%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790.3% 늘었다.
이처럼 유화업계가 지난해 부진을 딛고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제마진의 개선과 국제유가의 완만한 상승세가 있다. 특히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제마진은 상반기에 최근 몇 년 새 최고 수준인 배럴당 7~8달러를 기록하며 업계의 전반적인 실적이 나아졌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지난 5월 배럴당 65.06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가 최근 2개월간 17% 이상 급락하면서 이상신호를 보냈다. 게다가 경제제재가 풀리는 이란이 하반기부터 원유 수출 증가를 예고하면서 국제유가 하락에 대한 우려가 더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수익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정제마진도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지난 5월 9달러선까지 치솟았다가 이달 들어서며 5달러 중반대로 주저앉았다. 공급과잉 현상이 지속되면서 하반기 내내 정제마진이 고전을 면치 못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여러 비관적인 전망들이 등장하자 주요 업체 CEO들도 긴장을 놓지 않도록 임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최근 임직원 대상 세미나에서 “정유업계의 실적 호조는 오히려 ‘달콤한 독약’이 될 수 있다”면서 “국제유가 등의 일시적 개선에 일정 부분 우리의 구조적 대응 노력이 반영된 것으로 근본적인 대응 노력을 지속하자”고 주문했다.
또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2분기 실적발표 후 “에틸렌 수급 불균형에 따른 반사이익 등 외부요인이 반영됐다”며 “자만하지 말고 철저히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