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부담이 너무 크다.”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달 21일 경제 현안 전반에 대해 논의하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 부실을 놓고 한 발언이다. 약 3조원에 이르는 거액의 손실에 이어 향후 조선업황 전망까지도 불투명해지자 국책은행 수장으로서 답답한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실제 최근 5년간 부실기업 하차장 역할을 담당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이 떠안은 부실 여신은 5조5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 법정관리 기업의 채권 회수율이 통상 30% 정도에 머물고 있어 약 4조원에 달하는 채권은 휴지 조각이 된 셈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 없이 부실기업에 자금만 지원하고 부실을 떠안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11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원석(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이들 국책은행에서 대출받은 기업 중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은 333곳으로 여신은 5조4693억원 규모다.
산업은행이 지원한 기업 중 지난 201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팬오션·동양시멘트 등 225곳이다. 여기에 금호산업 등 워크아웃 기업이 41곳, 채권단 자율협약 대상이 12곳이다. 법정관리 신청 당시를 기준으로 이들 기업에 대한 대출액은 4조1356억원이다. 산업은행은 이 중 171개 기업에 대한 채권 1조5764억원을 부실채권(NPL) 시장에 헐값에 넘겼다. 또 대출액 중 6356억원을 법원 결정에 따라 출자전환했고, 5910억원은 상각처리했다.
수출입은행이 지원한 기업 중 지난 2011년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법정관리로 간 기업은 108곳에 달한다. 이들 기업에 대한 수출입은행의 여신은 1조30337억원이나 된다. 수출입은행은 이 중 311억원을 출자전환했고, 358억원은 상각처리했다.
이처럼 이들 국책은행이 부실기업들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면서 ‘은행ㆍ기업 동반 부실화’가 가시권에 접어들고 있다. 기업이 부실화할 조짐을 보일 때 시중은행들은 발 빠르게 여신을 회수하는 동안 국책은행 입장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시중은행이 회수한 여신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석 의원은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동반 부실화하고 있다”면서 “국책은행은 정부에 기대지 말고 여신 관리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