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지나온 70년, 앞으로의 70년

입력 2015-08-1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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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5000년간 930회에 달하는 이민족 침입을 당하고도 굳건히 살아남은 나라.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국제 원조를 받아 살아야 했지만 반세기도 되지 않아 국제 원조를 주는 위치가 된 세계 유일의 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이 67달러에서 70년 만에 420배 이상 늘어난 2만8180달러로 성장한 나라. 대한민국이 넓은 영토나 풍부한 지하자원 없이도 7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달성한 경이로운 발전상을, 세계인은 ‘기적’ 혹은 ‘신화’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산업기술 진흥정책과 기업 지원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을 이끌고 있는 필자로서는 감회가 더욱 남다르다. 제조업과 수출을 바탕으로 한 우리 경제의 고속성장 과정이야말로 기술혁신의 역사와 정확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독자 모델 자동차 포니, 중화학공업 전성시대를 연 포항제철, 후발주자로 출발했지만 순식간에 세계시장을 석권한 D램 반도체 등은 기술강국, 수출강국의 초석을 닦은 계기이자, 우리나라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 자리에 오르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경제 및 산업구조가 성숙 단계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3%대의 성장률을 지키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인접국 중국이 ‘빠른 모방과 추격(fast follower)’ 전략을 바탕으로 기술 추격을 거듭해 우리의 턱밑까지 쫓아온 상황도 위협 요소다.

신성장동력 발굴에 대한 절박함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4대 개혁안’이다. 대통령은 얼마 전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는 노동, 공공, 교육, 금융 등 4대 분야에서 구조 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고용을 유도할 임금피크제 도입, 정부 재정 누수를 야기하는 중복·과잉 사업 통폐합, 현장 맞춤형 창의적 인재 양성, 보신주의 담보보증 영업 행태 개선 등을 통해 효율성을 저해해 온 관행과 적폐를 해소하고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노동·공공 분야 개혁의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분야의 개혁 역시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뒷받침할 계획이다. 특히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려주는 행복교육을 위하여 방과후 기술체험 교실 ‘생활 속 창의공작플라자’, 여학생을 산업기술 현장에 초대해 실험실습 기회를 제공하는 ‘K-Girls’ Day(케이-걸스데이)’를 운영하는 등 자유학기제에 필요한 현장체험학습 저변을 넓혀 가겠다. 올해는 직업교육 선진국인 스위스에 국내 마이스터고 졸업생들을 파견해 현장형 기술인재를 육성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는데 학생들은 물론 현지 기업들의 기대도 크다.

기술금융 활성화 움직임에 발맞춰 기술사업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 또한 KIAT의 몫이다. 기업들이 라이프 사이클에 맞춰 자본을 손쉽게 공급받고 상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기술평가, 기술금융 제도를 정비하고 공공기술 이전을 활성화할 생각이다. 크라우드펀딩, 간편결제 등 핀테크를 활용해 창업한 기업에도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개인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창조경제에 맞게 기술사업화 전담기관의 역할을 더욱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대전환기에 있다. 정체기를 지나 다시 한 번 세계인이 주목할 도약을 하려면 그동안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던 성장 패러다임도 재정립해야 한다.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우리의 지난 70년을 이끌어 온 경험과 자신감에서 그 답을 찾고 싶다. 꾸준한 연구개발(R&D)을 바탕으로 한 기술혁신, 기술혁신이 선도하는 발전모델이야말로 우리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를 도약의 출발점으로 삼으면 어떨까. 기적적 경제성장의 신화를 보여준 우리는 자긍심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 그간의 축적된 경험과 자신감은 어려운 대외여건과 저출산·고령화·청년실업이라는 우리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위기 극복의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도전정신,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중소·중견기업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은 절대 지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4대 개혁이라는 지상 과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지혜와 강인한 정신력을 집중하면 활력 넘치고 따뜻한 경제 공동체에 대한 해답을 우리 안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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