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현장] 소주 키핑과 스크린골퍼

입력 2015-08-1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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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골프 인구가 급증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필드에 나가지 못하는 스크린골퍼도 적지 않다. 이들을 놓고 "실수요자로 이어질 것이다", 또는 "그렇지 않다"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뉴시스)

강원도 여행 중 미묘한 광경을 목격했다. 숙소 근처 한 순대국밥 집에서 생긴 일이다. 가게는 이른 아침부터 제법 많은 손님이 오갔다. 그 중 나이 짐작이 쉽지 않은 한 중년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남성은 7000원 하는 순대국밥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그리고 조용히 순대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는 주인장에게 말을 건넸다. “이거 뚜껑 꼭 닫아서 내일 아침에 내줄 수 있을까?” 소주병이다. 한 잔이나 마셨을까. 남성의 손에 들린 소주병엔 제법 많은 량의 소주가 출렁였다.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은 군소리 없이 소주병을 받아 냉장고에 넣었다.

다음날 아침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순대국밥 한 그릇을 비운 남성은 이번에도 소주 한 잔이나 마셨을까. 남성은 또다시 소주 키핑을 부탁했다. 주인장은 다소 불만 섞인 얼굴로 소주병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소주병을 받아들고는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남성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순대국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식사엔 키핑 소주가 곁들여졌다. 남성은 이번에도 주인에게 먹다만 소주를 건넸다. 그러나 주인의 반응은 놀랍도록 싸늘했다. “아~ 재수가 없을 라니까. 소주 한 병 가지고 뭐하는 짓이에요!” 당황한 남성은 잠시 말을 잊은 듯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그럼 뚜껑 꼭 닫아서 필요한 사람 있으면 내주쇼”라는 말만 남긴 채 가게를 나섰다.

결코 흔치 않은 광경이다. 주인장은 소주 키핑이라는 황당한 서비스의 대가가 고작 7000원 순대국밥 한 그릇이라는 데 화가 치밀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3000원짜리 소주 키핑은 ‘내일 다시 오겠다’는 무언의 약속이기도 했다.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간 소주 키핑 사건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수년 전 ‘스크린골퍼, 황금알 낳을까’라는 테마로 기획 취재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스크린골퍼란 필드에 나가기 보다는 스크린골프를 즐기는 골퍼를 지칭하는 신조어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젊은이나 초보자다.

잊히지 않는 건 당시 스크린골퍼를 바라보던 골프업계 종사자들의 시선이다. 스크린골퍼가 잠재 고객이라는 점은 인정해도 환경적(시간ㆍ경제)으로 여유롭지 못한 만큼 실수요자로 이어질 확률은 높지 않다고 그들은 판단했다. 실제로 스크린골퍼 대상 타깃마케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스크린골퍼를 바라보던 골프업계 까칠한 시선이 소주 키핑을 거부한 순대국밥집 주인장의 매서운 눈빛이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 천대 받던 1인 골퍼를 위한 전용 부킹 시스템이 개발됐고, 그린피는 대폭 낮아져 10만원이면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골프장도 제법 늘었다. 스크린골퍼를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황금알까진 아니라도 얼마든지 실수요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입증됐다.

작은 생각 차이가 세상을 바꿔가고 있다. 스크린골퍼는 환경이 여의치 않지만 어떻게든 골프를 즐기려는 사람이기도 하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존재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일까. 소주 키핑도 그리 황당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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