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격언에는 '배고픈 변호사가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라는 말이 있다.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들이 생계유지에 매달릴 경우 변호사로서 적절하지 않은 일까지 맡으면서 결국은 사회문제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18일 국내 최대 규모의 지방 변호사 단체인 서울지방변호사회 김한규(45·사법연수원 36기) 회장을 만나 변호사 2만명 시대의 불황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관해 들어봤다.
김 회장은 변호사 시장 문제가 단순히 '밥그릇 이기주의'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불거진 '집사변호사' 문제를 변호사 시장이 왜곡되면서 생기는 현상의 단적인 예로 들었다. '집사변호사'란 구치소에 수감된 수용자들을 상대로 변론과 무관한 말동무를 해 주거나 잔심부름을 해 주고 대가를 받는 변호사를 말한다.
"집사변호사라는 게 2001년 이용호 게이트 때 이미 나온 얘기에요. 예전엔 변호사들이 부끄러워서 하지 않던 일인데, 요즘은 재벌이나 거물이 아니라 '범털'들도 집사변호사를 써요. 일본의경우 변호사 수를 늘리니까 범죄단체 하수인 역할을 하는 현상까지 벌어졌어요."
합의금을 받아낼 목적으로 법 위반 사례를 찾아내는 고발대리나 승소 가능성이 매우 낮은데도 소송을 부추겨 이익을 챙기는 무분별한 기획소송도 변호사업계 불황이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는 사례로 꼽았다.
"누군가를 처벌하는 문제를 수사기관이 아닌 변호사가 맡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 건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요구하면 되는 문제죠. 저작권법 위반으로 대량 고발을 하거나 기획소송을 남발하는 것도 다 예전부터 할 수 있었던 건데, 안하고 있던 거거든요. 하지만 이런 건 앞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겠죠."
김 회장은 전관예우와 연고주의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 변호사 시장이 왜곡된 현상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변호사가 하는 일이라는 게 의사들하고 비슷해요. 누군가의 생명, 재산, 명예. 이런 걸 지켜주는 전문직이잖아요. 그런데 법조시장이 신기한 게 의사랑은 또 달라요. 사람들이 의사를 찾아갈 때는 가까운 곳에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려고 하지만, 변호사를 찾는 의뢰인은 재판장이나 검사와 연고관계를 가진 변호사를 어떻게든 찾으려고 해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변호사가 몇만명이 나와도 수임료는 여전히 고액일 테고, 국민에게 폭넓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요."
서울변회는 서울중앙지법과 함께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재판장과 변호사가 같은 대학 출신이거나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등 연고관계가 있을 경우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배당을 다시하는 전관예우 방지책을 시행 중이다.
"결국에는 재판장과 친분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재판부가 바뀐다는 게 국민에게 인식이 되면 굳이 전관을 선택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그러면 의뢰인의 선택의 폭이 넓어질 테고, 자연스럽게 열심히 하는 변호사, 실력있는 변호사들에게 기회가 갈 것이라고 봅니다."
김 회장은 이외에도 법률구조공단이나 정부법무공단등 국가기관이 소송 수행 영역을 계속 확대하는 것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5년차 미만의 젊은 변호사들에게 돌아가는 기회가 너무 적어요. 적은 수임료를 받는 사건이라도 경험을 쌓아야 변호사들이 균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건데, 지금은 낮은 수임료 사건은 국가가 개입하는 영역이 커지고 있고, 고가 수임료 사건은 대형로펌이 잠식하고 있어요. 최소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변호사들이 늘어나면 고스란히 의뢰인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됩니다."
김 회장은 변호사 업계 시장 정상화가 고가의 수임료가 성행하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예전이 이상한 거죠. 한달에 몇 억원? 말이 안되는 거에요. 저도 강남 아니라 용인에서 만년 전세로 살고 있고, 자가용도 2007년식 13만 킬로를 탄 걸 몰아요. 변호사들이 평범한 생활을 해도 상관없어요. 한달에 2~3건이라도 사건을 수임해서 변호사로서 느껴야 할 기본적인 직업적인 만족, 이걸 하게 해주자는 거죠. 이게 차단되다 보니 자꾸 다른 곳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