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꽃들의 36.5℃] 하시마섬과 유재석의 눈물

입력 2015-09-03 09:26 수정 2015-09-0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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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조선인이 강제 노역한 하시마섬 탄광에서 발견된 한글.(출처=유튜브 '군함도의 진실')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매캐한 공기가 숨통을 죄어왔을 테다. 벗어날 수만 있다면, 스스로 다리를 절단하리라…. 그러나 절규마저 내지를 수 없었다. 1평 남짓한 공간에 예닐곱명이 빽빽이 섰다. 최대 16시간. 피맺힌 마음으로 적어 내려간 말은 “어머니 보고 싶어요.”

까만 탄광 벽에 새겨진 한글이 마음을 할퀸다. 70여년 전, 일본 하시마섬의 이야기다. 군함을 닮았다 해서 군함도(군칸지마)라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선 800여명의 조선인이 목숨과 뒤바꾼 노역을 강요당했다. 특히 해저 1000m 이상 뚫은 수직갱도는 습기로 가득할 뿐 아니라, 막장 높이도 대단히 낮아 온전한 자세로 서 있기도 버거웠다. 폭력과 갖은 고초에 목숨줄을 구해도 이내 원자폭탄이 투하된 나가사키의 도시 청소 노역자로 내몰렸다.

죽음의 섬, 하시마. 그곳에서 일부 기록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50여명. 제국주의 전범임에도 뻔뻔한 낯짝으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 탓에 진상 파악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일본이 무성의한 태도를 넘어 추악함을 만천하에 또 다시 드러낸 건 불과 7월 5일 독일 본에서다. 이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하시마섬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메이지 산업혁명의 유산’으로, 근대화 과정의 산업 시설이 잘 보존됐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같은 시기 백제역사문화지구가 등재됐다고 마냥 기뻐할 노릇이 아니다. 오히려 독일 나치 만행의 온상인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은 건 철저한 참회를 밑바탕으로 후대에 길이 반면교사 삼기 위함이었다.

▲1940년대 일제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이 노역한 하시마섬과 이를 찾은 MBC '무한도전'.(출처=MBC 방송 캡처)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무한도전’의 말미에선 유재석과 하하의 예상치 못한 모습이 시청자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늘 웃음을 선사하던 하하는 머리를 부여잡고 상기된 채 오열했다. 입을 굳게 다문 유재석이 허리를 푹 숙였다. ‘배달의 무도’ 특집 일환으로 하시마섬을 찾은 이들의 숙연한 모습은 잠깐의 예고만으로도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오는 5일 본방송에서도 커다란 파문이 예상된다.

이처럼 시청자가 ‘무한도전’ 행보에 박수를 보내는 배경에는 방송가, 나아가 대중문화계가 보인 그동안의 실망스러운 논란들 역시 한 몫 한다. 이번 ‘광복 70년 신바람 페스티벌’에서 아이돌 그룹 블락비 피오는 일본어 ‘問題ない(문제없다)’라는 글귀가 쓰인 의상을 입고 무대를 꾸몄다. 이외에도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 문양을 무대 의상에 활용하는 치욕스러운 일도 왕왕 발생하고 있다. 기본적인 역사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는 최소한의 상식선을 지켜야 할 대중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란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뼈아픈 말을 상기해야 하는 이유다. “역사에 마침표는 없다”며 지난 1월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주년 연설에서 참회한 독일 메르켈 총리의 배경과 같다.

수치스러운 건 어두운 역사만이 아니다. 어느새 역사는 우리에겐 낡은 도서관에 잠든 무덤이 됐다. 그리고 대한민국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의 땀과 눈물을 빼앗아 쌓아올린 하시마섬은 찬란한 일본 근대화의 성전이 되었고, 그곳에서 스러져간 젊은 영혼들을 달랜 건 정부도 아닌 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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