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역사를 낳는다-세계 여성박물관 현지 취재] <9> 오스트리아 히티사우 여성박물관

입력 2015-09-08 15:26 수정 2015-09-0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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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와 한몸인 산촌의 문화여성들

2000년에 문을 연 후 매년 2~3회 여성문화 전시·강연

방문객 대상 상시 여론수렴 지역사회와 조사결과 공유

특이한 건물설계 독창적 활동으로 건축상·문화상 받아

▲히티사우 여성박물관의 정면. 왼쪽 아래로 내려가면 소방서 등 다른 시설이 나온다.
▲히티사우 여성박물관의 정면. 왼쪽 아래로 내려가면 소방서 등 다른 시설이 나온다.

오스트리아 서부 포르알베르크 주(주도는 브레겐츠)의 브레겐처발트에 있는 히티사우 여성박물관은 늘 방문객을 대상으로 앙케이트 조사를 한다. 10개 문항으로 이루어진 설문지는 박물관을 알게 된 경위, 동행한 사람, 방문 횟수, 박물관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무엇인지 등을 묻는다. 그리고 박물관의 입구, 안내 표시, 직원의 친절도 등에 평점을 매기고 박물관에 대한 인상(공감이 간다, 비싸다, 지겹다, 단조롭다 등)에도 표시를 하도록 설계돼 있다.

특이한 것은 박물관에 관한 것만 묻는 게 아니라 히티사우에 온 목적과 이용한 교통편, 히티사우에서의 상품 구입 여부, 이곳 숙박업소 이용 여부도 묻는 점이다. 설문 내용으로도 알 수 있듯이 히티사우 여성박물관은 조사 결과를 주민들과 공유하며 히티사우 공동체(Gemeinde Hittisau)라는 조직을 매개로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히티사우는 인구가 1850명밖에 되지 않지만 풍부한 목재 등 산림자원을 이용한 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해발 790m인 이 작은 산촌에 치즈박물관, 생활사진박물관 등 박물관이 세 개나 된다. 새로운 밀레니엄 2000년 7월 7일에 문을 연 여성박물관(4500㎡)은 오스트리아의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박물관이다.

▲박물관 내부에서 본 마을. 왼쪽에 보이는 게 학교, 그 옆이 교회.
▲박물관 내부에서 본 마을. 왼쪽에 보이는 게 학교, 그 옆이 교회.
박물관 건물 자체가 지역사회와 한몸으로 돼 있다. 히티사우는 1998년에 소방서 건물을 신축하면서 음악공간과 박물관을 함께 짓기로 하고, 건축설계가를 공모한 끝에 30여 지원 업체 중 한 곳을 골라 아주 특징적인 건물을 지었다. 언덕 위의 박물관은 온통 독일가문비나무 등 목재와 큰 유리로 지었다. 건물 측면의 언덕 아래 저층(底層) 부분에는 소방서와 문화의 집을 배치했다. 문화의 집은 관현악 연주장,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다. 박물관의 정면은 읍내 쪽, 소방서는 그 반대편을 향하고 있다.

박물관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전시를 매년 2~3회, 그동안 30여 회 개최했다. 올해 4월 18일부터 5월 말까지는 포르알베르크 주의 첫 여성 건축가 아델하이트 그나이거(1916~1991)를 조명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지금 전시 중인 것은 여성과 산에 관한 기획으로, 여성 산악생활사라고 할 만한 내용이다. 6월 14일 개막된 이 전시는 내년 10월 26일까지 무려 1년 4개월간 열린다.

▲히티사우 여성박물관을 소재로 한 오스트리아 항공우표.
▲히티사우 여성박물관을 소재로 한 오스트리아 항공우표.
8월 18~21일에는 이와 별도로 ‘현대 여성문학에 나타난 이슬람’을 주제로 이집트 인도네시아 레바논 알제리 등의 여성 작가를 초청, 강연회와 출판 콘서트, 영화의 밤 등 다양한 행사를 펼쳤다.

국토의 서쪽 끝 외진 산마을의 박물관은 이런 전시와 각종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박물관은 개관하던 해에 바로 오스트리아 건축인상을 받는 등 네 차례 건축상을 받았다. 이어 2011년 ‘최고 지역문화 운동단체’로 선정돼 국내에서 상금이 가장 많은 ‘오스트리아은행 문화상’을 받았다. 상금 7만 유로는 한화 9300여 만 원 상당으로, 박물관의 연간 운영비 6만 유로보다 더 많다. 주정부, 오스트리아정부의 지원도 받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정부는 2012년 1월부터 히티사우 여성박물관을 그려 넣은 항공우표(1.45유로)도 발매하고 있다.

매년 방문객은 1만2000여 명. 이 중 1000여 명이 학생이다. 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초중학교의 학생들이 단골손님들이다. 이들과는 함께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다. 박물관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은 14명. 직원과 봉사자의 연령은 19세부터 82세까지 폭이 넓다. 2011년 11월에는 히티사우박물관 후원회도 결성돼 운영되고 있다. 당연히 남성들도 대환영이다.

▲히티사우 여성박물관에서 일하는 팀 동료들.
▲히티사우 여성박물관에서 일하는 팀 동료들.
설립 당시부터 활동하고 있는 헬가 레들러 씨는 “오스트리아인들은 물론 중국 일본 스칸디나비아반도 등의 여성계 인사들이 박물관을 다녀갔다”며 “방문객들은 이 지역에서 나무로 된 가장 큰 건물을 보며 시골 고향집에 온 듯한 분위기를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레들러 씨를 비롯한 박물관 직원들은 희생당하고 무시돼 온 여성의 역사와 삶을 재조명하고, 사회의 마이너리티인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 잊히거나 인멸되기 쉬운 일상생활의 물품과 문서를 잘 수집하고 보관할 것 등을 강조했다. 여성에 관한 모든 것을 수집 보관 탐색 기록하는 데 주력하는 것, 그것이 여성사박물관을 짓기로 한 한국에 대한 조언이다.

독일과의 접경지대에 살고 있는 히티사우 사람들(Hittisauer)은 국제적이고 개방적이지만 정리 정돈을 좋아하는 깔끔한 성격이라고 한다.

히티사우(오스트리아)=글사진 임철순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fusedtree@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여성이 역사를 낳는다-세계 여성박물관 현지 취재] <9> 인터뷰- 조라페라 히티사우 여성박물관장

"박물관은 지역 공동체 대화ㆍ소통ㆍ토론의 장"

초창기부터 재직해 온 박물관의 관장은 이곳 출신 엘리자베트 슈퇴클러(52)다. 박물관 큐레이터인 슈퇴클러 씨는 박물관 설립에 앞장섰고, 초대 관장으로 박물관의 기초를 잘 닦았다.

2009년 4월에 취임한 현 관장 슈테파니아 피츠샤이더 조라페라(49) 씨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오스트리아의 빈과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예술과 건축사를 공부한 사람이다. 이어 빈 예술의 전당, 빈 예술사박물관,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서 일한 바 있는 예술사학자이자 전시기획 전문가다.

그는 “박물관은 전시공간만이 아니라 대화와 소통, 토론의 장이 돼야 한다고 확신한다”며 “히티사우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 문화 이벤트, 어린이 교육, 워크숍 등 모든 활동의 초점이 이에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 매주 월•화•목요일에 특별한 행사를 열고 수시로 예술 문화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2018년에는 두 번째 유럽 여성박물관회의(첫 번째는 지난해 본과 비스바덴에서 개최)가 이곳 히티사우에서 열린다.

그는 취임 당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면서 “여성박물관은 지역을 넘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므로 직원들과의 협동을 통해 박물관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기자는 다른 여성박물관도 방문했지만, 취재하고 다녀간 뒤에도 지속적으로 뉴스레터를 보내 오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히티사우(오스트리아)=글•사진 임철순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fused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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