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파탄 책임 배우자는 이혼 청구 불가"…대법관들 의견도 '팽팽'

입력 2015-09-1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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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생활이 제대로 유지될 수 없을 만큼 파탄이 된 데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을까. '바람피운 남편도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느냐'가 쟁점을 알려진 사건에서 대법원은 기존 입장을 유지해 청구권이 없다고 봤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던 만큼 대법관들도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5일 혼외자를 둔 남성 백모 씨가 법적 부인 김모 씨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 유책주의·파탄주의란

1976년 김 씨와 결혼한 백 씨는 외도를 통해 1998년 혼외자를 두게 됐다. 백 씨는 2000년 집을 나와 혼외자를 낳은 여성과 동거를 시작했고, 10여년 간 김 씨에게 자녀 3명의 학비를 부담하고, 생활비도 달마다 100만원씩 지급했다.

더 이상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김 씨는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백 씨는 강제로 이혼을 시켜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백 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법원이 취하고 있는 '유책주의'에 따른 결론이었다.

유책주의는 부부 당사자 중 혼인관계 파탄에 대한 책임이 없는 쪽에만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백 씨의 사례에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은 김 씨이고, 외도 책임이 있는 백 씨는 청구할 수 없다. 반면 객관적으로 부부관계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인정된다면 책임 유무를 따지지 않고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입장이 파탄주의다.

우리 법원은 유책주의를 취하고, 다만 파탄에 책임이 없는 배우자가 단순히 보복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이혼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 대법관 7인, "책임있는 배우자도 협의이혼 가능…파탄주의 변경 필요 없어"

양승태 대법원장과 이인복·이상훈·박보영·조희대·권순일·박상옥 대법관은 협의이혼 제도가 있는 점을 근거로 파탄주의 도입 필요성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혼에 관해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여러 나라의 이혼법제는 우리나라와 달리 재판상 이혼만을 인정하고 있을 뿐, 협의상 이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책배우자라 하더라도 상대방 배우자와 협의를 통해 이혼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전체 이혼 중 77.7%는 양 당사자의 협의에 의해 이혼을 한 경우여서 이혼을 재판으로 청구해 강제 이혼한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수의 대법관들은 또 파탄주의가 도입되면 이혼청구를 받은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희생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혼 후 부양책임 등이 법제화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파탄주의를 도입해 이혼을 쉽게 할 경우 법원이 위자료나 재산분할 청구권을 가지고 이혼 상대방을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앞으로 이혼 상대방에게 물질적 지원을 강제하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 한 판례변경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파탄주의를 도입하게 되면 법적으로 금지된 '중혼'을 결과적으로 허용하게 된다는 의견도 다수의견에 반영됐다. 이번 판결 대상이 된 사건도 혼외자를 키운 배우자가 이혼청구를 한 사례였다. 또 지난해 이혼 시점에서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가 49.5%에 달해 가급적이면 해체되지 않은 가정에서 자녀들이 생활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적인 점도 고려됐다.

■ 대법관 6인 반대의견, "회복 불가능한 혼인 상태는 이혼 확인해주는 게 바람직"

반면 민일영·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 대법관은 "부부 공동 생활체로서의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소멸했다면, 실질적인 이혼 상태였다고 봐야 하므로 이에 맞게 법률관계를 확인·정리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반대의견을 냈다.

민 대법관 등은 혼인상태가 지속되는 게 한쪽 배우자에게 고통이 되는 경우에는 우리 민법이 이혼사유로 들고 있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인정하고, 다만 위자료 액수나 재산분할 비율을 정할 때 책임있는 배우자의 부담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다만 민 대법관 등도 예외적으로 책임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인정할 경우 상대방 배우자나 자녀에게 큰 불이익이 있는 경우에는 이혼청구가 불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 대법원, 유책배우자 이혼청구 사유는 확대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기존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대신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가 이혼청구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혔다. 기존에는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유지할 의사가 없는 경우에 한해 유책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상대방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뤄졌다고 판단할 경우 혹은 오랜 시간이 지나 유책성이 약화돼 현 시점에서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경우에도 이혼청구가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여기에는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 의사 △별거기간 △이혼할 경우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생활보장 정도 △미성년 자녀가 있을 경우 양육·교육·복지 상황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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