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졌으니, 아마도 ‘난센여권’이라는 단어도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난센 여권은 노르웨이의 탐험가 난센(1861~1930)의 이름을 딴 여권이다. 난센은 사상 처음 그린란드를 횡단했다. 난센의 북극탐험은 모험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다. 하지만 난센이 192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탐험가 난센은 인도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정치가이며 활동가로서 1차 세계대전을 마친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다.
난센여권은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를 떠난 150만명의 러시아인을 구제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시도되었다. 국제연맹은 1921년 난센을 러시아 난민을 위한 고등판무관으로 임명했다. 난센이 가장 먼저 수행했던 조치는 러시아 난민에게 신분증명서를 발급하는 것이었다.
난민이 피난국으로 진입해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가 있다면 법적 신분의 확보일 것이다. 그러나 난민들 중 여권을 챙겨 정상적인 절차로 나라를 탈출한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난센은 여권을 대신할 수 있는, 효력이 있는 신분증명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제연맹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난민이 체재하는 나라에서 신분증명서를 교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난센여권이라고 한다. 이 증명서는 1930년 이후 현실적 기능이 사라졌지만 러시아, 터키, 시리아, 쿠르드, 아르메니아 등을 탈출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물론 난센여권의 실질적인 효력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할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러나 53개국이 모인 제네바회의에서, 그리고 국제연맹의 이사회에서 난민의 신분에 대해 고민을 하는 촉매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다.
2014년 여름, 서울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난센여권’을 주제로 전시가 개최되었다. ‘난민’이라는 주제로 동시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난민 당사자, 난민과 함께 하는 기관, 난민이 설립한 조직이 이 전시에 함께 했다. 몇 차례 방문했던 경험을 되돌아보면, 이 카페는 상당히 독창적인 공간이었다. 신기한 맛의 음료와 개성 있는 작가들의 전시가 한 공간에 응축되었으나, 이 응축은 긴장감을 주기보단 여유로 충만했다. 멋진 공간이었다.
문화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태원의 명소로 명성을 쌓아가던 이 카페가 갑자기 유명해졌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월드스타 ‘싸이’와의 분쟁 때문이다. 단순한 이야기다. 예술적인 교감을 바탕으로 요즘 유행하는 ‘콜라보레이션(협업)’을 했으면 좋았을 사람들이,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로 만났다. 싸이의 소속사인 YG의 양현석 대표가 이 분쟁에 개입하고 서로가 양보해 절충적인 합의에 도달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21일 아침, 강제집행이 시도되었다. 서울 한 복판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있었고, 강제집행을 막던 이들 중 4명이 연행되었고 카페 내에서 전시 중이던 작품들이 훼손되었다. 양측은 모두 법적인 정당성과 부당함을 각각 호소하고 있다.
사건을 보는 프레임은 다양할 수 있다. 싸이 측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건물주의 법적 권리와 절차 프레임이다. 카페 측은 이 사건을 법이 보호해주지 않는 것들의 권리 프레임으로 보고 있다. 언제나 ‘프레임’이란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다. 더 정확히는 논리적인 완결성이 있으니 프레임이다. 그래서 프레임 자체는 논리적인 허점이 없다. 액자는 중립적이고 허점이 없다. 문제는 우리가 액자 속의 그림만 볼 것인가, 아니면 액자가 걸려 있는 풍경 전체를 볼 것인가에 있다. 양측의 논리 프레임을 벗어나 이 사건이 놓인 배경을 먼저 보자는 것이다.
최근 예술인들은 현대사회의 난민이다. 새로운 것을 제시하고,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을 문제적 관점으로 파악하는 것에서 예술은 시작한다. 그래서 예술은 규범보다 빠르다. 이 때문에 새로운 것을 주장하고 적용하는 예술인들은 당대에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떠밀리는 존재들이었다. 몇몇 유명세를 타는 작가들을 제외하면, 스스로와 싸우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예술인들은 자기 밥벌이를 하기 힘들다. 요즘은 특히 더 하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홍대 인근, 성수, 이태원, 서촌에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패턴이다. 낙후한 지역이 있다. 지역이 낙후했으니 임대료가 저렴하다.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예술인들이 모여든다. 이들이 지역에 예술적인 실험을 시작하면 그 뒤를 이어 작은 카페와 특색 있는 식당들, 문화공간들이 들어선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사람들이 이 지역을 찾기 시작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오를 때쯤 거대 자본과 투자자본이 이 지역을 찾아온다. 건물주인들이 하루 아침에 바뀌고 임대료가 폭등하고,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피난왔던 예술인들은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지역을 떠난다. 그들은 피난민처럼 떠난다. 이 카페도, 이태원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이번 사건의 두 프레임이 충돌하는 배경을 보자고 했다. 난민처럼 떠밀려왔던 예술인들이 다시 난민처럼 떠나는 모습이, 그 배경이다. 예술인들에게 이런 떠남, 혹은 축출은 익숙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상대가 싸이라니,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싸이가 유명하고 돈 많은 연예인이라서가 아니다. 싸이는 나름의 스타일을 갖춘 음악가이며 동시에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전시를 하는 예술인들과는 다른 삶의 질서에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역시 예술인이었다. 그러니 그가 휘두르는 칼은 정면에서 휘둘려진 장검이 아니라 뒤에서 날아온 비수다.
앞서 난센여권은 난민 문제의 상징이라고 했다. 쿠르디의 사진은 우리 세기에 다시 난민의 문제를 일깨운 또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싸이는, 불행히도 대한민국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이 될 상황에 놓였다. 아마 싸이의 소속사 YG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 이를 밸류 체인 관리의 관점에서 더 적극적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회사의 주력 상품이 시장에서 예술 억압의 상징이 되게 생겼다, 비유컨대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인데 주력 차종이 원인 모를 사고의 상징으로 거론되는 것을 떠올려 보면 된다.
작은 일일까? 이렇게까지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는 일일까? 헐겁게 쭈그리고 앉아 축구공을 꿰매는 파키스탄 소년의 사진이 보도된 후 20년이 된 지금까지 회사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이키의 사례를 본다면, 확대해석이 필요한 일이다. 회사의 홍보채널이나 리스크관리 전문가가 이 사건에 함께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수많은 ‘챔피언’들이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에 실패해 위기에 직면하는 것이, 비즈니스 세계의 엄연한 패턴이다. 예술인들이 난민처럼 떠도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이 사회의 패턴인 것처럼,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법적 책임을 넘어서는 응징체계를 작동시키는 것도 이 사회의 패턴이다. 패턴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인들에게도 난센여권이 주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사건은 어떻게 해결될까? 이 사건의 해결이 싸이와 YG, 그리고 예술인들에게 단 한 뼘이라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모두가 불행해지는 이 게임을 왜 해야 하는 걸까? 모두가 실패하지 않도록, 원만한 합의가 도출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