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대표하는 스포츠는 민속씨름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모래판의 트로이카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이 전성기를 누리던 1980년대 민속씨름은 장사씨름이라는 타이틀로 바뀌었고, 경기장 대부분의 좌석은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차지가 됐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프로야구는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매년 추석쯤이면 가을야구(포스트시즌)가 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궜다. 가을야구는 30여 년 동안 숱한 명장면을 남기며 감동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한국 스포츠 역사 속 가장 짜릿했던 추석 명장면은 1988년 서울올림픽 유도 김재엽의 금메달이다. 김재엽은 그해 9월 25일(음력 8월 15일) 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유도 60㎏급 결승전에서 일본계 미국인 케빈 아사노를 판정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승리를 확정지은 김재엽은 미리 준비한 한복을 차려입고 시상대에 올랐다. 추석을 의식한 시상식 의상이었다. 한가위를 맞아 모처럼 TV 앞에 모여앉은 사람들은 뜨거운 감동에 휩싸였다. 김재엽은 1984년 LA올림픽 결승전에서 일본의 유도 영웅 호소가와 신지에게 누르기 한판패를 당해 은메달에 그친 뼈아픈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에서는 무명의 케빈 아사노가 준결승에서 호소가와를 판정으로 꺾고 결승에 올라 호소가와와의 재대결이 무산됐다.
전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 이형철과 일본의 오니즈카 가쓰야의 타이틀매치도 추석에 남긴 뜨거운 명승부다. 이형철은 1994년 추석을 이틀 앞둔 일요일 일본에서 프로복싱 WBA 주니어 밴텀급 챔피언 오니즈카 가쓰야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출중한 외모로 연예계에서도 활동하던 오니즈카는 이형철과의 경기를 끝으로 명예로운 은퇴식을 계획했다. 그러나 이형철과 오니즈카는 9라운드까지 난타전을 펼치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를 펼쳤다. 결국 이형철은 로프를 등진 오니즈카에 융단폭격을 가해 9라운드 TKO승을 거뒀다. 당시 한국 복싱은 단 한 명의 세계 챔피언도 없을 만큼 세계 복싱계의 변방으로 전락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