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V10 체험기, 이것은 모험가의 SUV

입력 2015-10-02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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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LG전자는 왜 가을비 흠뻑 내리는 이 아침에 반포대교 옆 세빛섬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하는 것일까. 한강의 애물단지인 세빛섬이라니. 썩 좋은 장소는 아니다.

폭우 속을 뚫고 신제품 발표회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바지 밑단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나는 무엇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을까. 제발 날 실망시키지 않길 바라며, LG전자의 새로운 스마트폰 V10을 체험해보았다.

다시 돌아온 디자인

디자인부터 시작해보자. 솔직히 입이 떡 벌어지게 섹시한 디자인은 아니다. 요즘 우리가 워낙 놀라움에 인색한 사람들이 되긴 했다. 디스플레이 양옆이 휘어지고, 화면이 위아래로 접히지 않는 이상 입이 떡 벌어지긴 어렵다. 하지만 V10의 디자인은 80점 이상이다. 세련되고 깔끔하며, 무리하지 않았다. 적어도 LG G4처럼 혹평에 시달릴 일은 없어 보인다.

LG전자 특유의 디자인 감각과 스타일을 회복했다는 점에선 안심이다. 컬러도 잘 뽑았다. 그런데 제일 예쁜 컬러는 꼭 국내에 출시하지 않더라.

디자인 자체보다는 소재에 신경 썼다. 후면엔 평범한 플라스틱 커버를 썼나 했는데, 만져보니 감촉이 특이하다. 약간 촉촉한 것 같기도 하다. 미끄러짐 없이 손에 착 붙는다. 실리콘 소재의 ‘듀라 스킨(Dura Skin)’ 케이스라는데, 메탈 소재처럼 시크하진 않아도 깨끗하고 견고한 느낌은 만족스럽다. 충격이나 스크래치에 강한 소재라던데 손에 쥐고 손톱으로 한 번 긁어보면 그 말을 바로 실감할 수 있다. 여간해선 상처입지 않을 강인한 후면 커버다.

프레임은 ‘스테인리스 스틸 316L’을 사용했다. 내부식성과 강도가 뛰어나 럭셔리 워치나 외과용 수술도구 등에 쓰이는 소재라고 한다. 단단할 뿐만 아니라 광택도 아름답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스틸과 부드러운 실리콘의 믹스매치가 은근한 재미를 안긴다. 아쉽게도 직접 만져보기 전까진 실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원 플러스 원 카메라

G시리즈부터 시작된 LG전자의 카메라 자부심은 이번 신제품에서도 여실히 찾아볼 수 있었다. 사실, 근거 없는 자부심은 아니다. G4의 카메라는 정말 훌륭했으니까. 카메라 한 번 만들어본 적 없는 LG전자가 이 정도 저력을 보여줌이 늘 놀랍다.

이번에도 카메라에 힘을 과도하게(?) 쏟았다. 전면에 카메라처럼 생긴 게 두 개나 있다고? 맞다, 정말 전면 카메라가 두 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용감한 시도다. 하나는 80도 화각의 일반 렌즈, 나머지 하나는 120도 화각의 광각 렌즈다. 셀카봉이나 셀카렌즈 없이도 같은 거리에서 더 넓은 영역을 담게 하기 위함이다. 사실, 나 역시 셀카 렌즈나 소프트웨어로 광각을 구현하는 앱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여러 명이 셀카를 찍을 때면 한없이 팔을 뻗으며 광각 렌즈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LG전자가 이런 니즈를 파악하고 사용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나섰다는 건 칭찬하고 싶다.

두 개의 전면 카메라는 살짝 엽기적이지만, 막상 사용해보면 크게 어색하지 않다. 전면 카메라 촬영 화면에서 터치 한 번으로 두 개의 렌즈를 오가며 화각을 바꿀 수 있다. 확실히 120도 화각이 훨씬 넓은 그림을 담아준다. 단체 셀카는 물론 나 홀로 여행에서 유용하겠다.

G4에서 날 당황케 했던 ‘카메라 전문가 모드’에 이어 영상 촬영에서도 ‘비디오 전문가 모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냥 촬영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찍히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과한 기능이다. 솔직히 나는 스마트폰 환경에서 ISO와 화이트밸런스, 셔터스피드 등을 조절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전문가 모드의 다양한 설정 영역에 열광하는 사용자도 있을 것이다. 비디오 전문가 모드에서는 셔터스피드를 1/6000초에서 130초까지 설정할 수 있으며 ISO는 50에서 2700까지 17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또, 전자식 손떨림 방지 칩을 탑재해 영상 촬영 시의 손떨림 보정도 가능하다. 심지어 녹음 기능도 대폭 강화했다. 어디 달렸는지는 살펴보지 못했지만, 3개의 고감도 마이크를 갖춰 특정 위치의 소리만 담는 지향성 녹음도 지원한다. 바람 소리가 걱정되는 야외 촬영에서는 윈드 노이즈 필터를 사용하면 된다.

신제품 발표회 현장에서는 장진 감독이 V10을 이용해 하루 만에 촬영한 단편 영화를 공개했다. 신선한 앵글과 선명한 화질이 놀랍더라. 스마트폰 특유의 간편한 촬영 환경 덕에 짧은 시간 안에 한 편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장진 감독은 비디오 전문가 모드를 활용해 쉽고 재미있는 촬영이 가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 영화를 보고 나니, 전문가 모드의 저력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멀티뷰 레코딩, 스냅 비디오, 15초 자동 편집 등 트렌디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기능들이 눈에 띈다. 특히 3개의 카메라 화각을 동시에 비교하며 촬영할 수 있는 멀티뷰 레코딩이 인상적이었다.

디스플레이가 두 개?

LG V10 공개 전, 디스플레이가 두 개라는 둥 여러 가지 흥미로운 소문이 돌았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실제 디스플레이는 한 장이지만 독립된 두 개의 화면으로 활용하는 이형 디스플레이 기술을 적용했으니까.

LG V10는 세컨드 스크린이라는 이름으로 디스플레이 상단의 일부분(51.4×7.9mm)이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화면이 꺼진 상태에서도 상단의 세컨드 스크린 부분만 따로 실행된단 얘기다. 덕분에 화면을 켜지 않고도 날씨, 시간, 날짜, 배터리 상태 등의 간단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메시지나 SNS 등의 알림 정보도 표시해준다.

나만의 문구를 설정해두면 손글씨처럼 표시해주는 서명 기능이 있는데,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애사심 돋게 기어박스 URL을 넣어보았다.

화면이 켜진 상태에서는 세컨드 스크린에 자주 쓰는 앱 아이콘을 배치해두고 즐겨찾기로 활용할 수 있다. 동영상을 감상하던 도중 전화가 와도 세컨드 스크린에 수신 정보를 표시해, 영상 화면을 가리지 않는 소소한 쓸모도 갖췄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지만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에 적용된 엣지 디스플레이와 같은 역할이다.

활용도나 기능은 비슷한 것 같은데 세컨드 스크린은 엣지 디스플레이만큼 멋지진 않다. 갤럭시 시리즈에 적용된 엣지 디스플레이는 왜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신 딱 보기에도 놀랍고 살벌한 최첨단 기술력이 느껴지지 않는가. V10의 세컨드 스크린은 그보다는 더 직관적이고 쓰기 쉽지만 놀라움을 놓쳤다. 무엇이 옳다고 평가하긴 이르고, 제조사들이 새롭게 개척한 화면을 두고 더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빠지는 데 없는 V10

현장에서는 가장 눈에 띄는 특징들만 살펴봤다. 디자인이나 소재, 카메라는 물론 사운드에 신경 쓴 점도 인상적이다. 32비트 하이파이 DAC을 내장해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평소에 음악을 스트리밍 서비스로만 듣는다면, LG V10에 적용된 업샘플링 기능을 기대해보자. 일반 음원이나 스트리밍 사운드도 조금 더 풍부한 음향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이제 숫자를 조금 나열해볼까. 2560×1440 해상도의 5.7인치 퀀텀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LG의 디스플레이는 언제 봐도 토 달 것이 없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화면이다. 가벼운 편은 아니다. 192g으로 조금 묵직한데, 나는 스마트폰이 너무 가볍거나 너무 얇아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프로세서는 스냅드래곤 808을 사용했다. 스냅드래곤 810이 아니라고 여기저기서 물고 뜯고 있는 것 같던데, 아마 810을 선택했어도 말은 많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지금 상황에선 808이 최선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프로세서의 성능이 판매량을 답보하는 시대도 지났으니까. G4를 통해 노하우를 쌓은 프로세서로 안정성을 꾀하는 게 옳다. RAM 용량은 4GB로 넉넉하다. G4보다 더 통 크게 내줬다. 내장 메모리는 64GB. 마이크로 SD 카드 슬롯을 지원해 최대 2TB까지 확장할 수 있다.

국내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탈착형 배터리는 그대로 유지했다. 배터리 용량은 3000mAh. 지문인식 기능에 고속충전까지 지원한다.

V10의 자리는 어디인가

모두가 관심이 집중된 가격을 언급할 차례다. 79만 9700원. 싸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다. 어중간한 가격이다. LG가 옵티머스라는 이름을 버리고 G시리즈로 신분 세탁을 하던 시절을 떠올려보자. 놀랍게도 그리 옛날도 아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V시리즈(아직은 혈혈단신이지만)는 번외 라인업일까, G시리즈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물타기일까.

LG 측에서는 G시리즈가 세단이라면, V시리즈는 SUV라는 멋진 비유를 내놓았다. G시리즈가 보다 폭넓은 고객층을 타겟으로 삼는다면, V시리즈는 역동적이고 새로운 모험을 즐기는 멀티미디어 세대를 겨냥했다면서. 의도는 알겠지만 모호한 설명이다. 79만 9700원이라는 출고가만큼이나.

선택과 집중은 좋은 전략이다. 하지만 V시리즈가 힙하고 역동적인 세대를 노리고 있다는 단서는 희박하다. 스펙 면에서 지나치게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진 않다. V10은 엄밀히 말하면 완벽한 프리미엄 라인이 아니니까. 그러나 소비자의 마음을 끄는 매력 면에서 보자면 아쉬움이 남는다.

세련된 디자인, 더할 나위 없는 카메라, 심지어 전면 듀얼 카메라다. 디스플레이도 따지고 보면 두 개, 견고한 후면 커버, 빵빵한 사운드. 부족한 건 없다. 사용자 경험 면에서도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다. 누군가가 이 제품을 사도 괜찮겠느냐 물으면 자신 있게 추천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LG의 팬층은 이리도 얕은 걸까. V(adVenture)라는 모험가의 이름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더 확실한 캐릭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특히 이런 시점에서는 말이다. 스타의 탄생을 기다리며, V10의 데뷔를 기념하는 기사는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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