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무인 재벌 3세를 그린 영화 ‘베테랑’을 본 1300만명은 열광했다. 이들의 응징은 대중에게는 탄산음료와 같다. 절대 깨질 것 같지 않았던 성벽이 무너질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 이는 인간의 본성이다. 재벌이 시민 사회의 해우소 같은 소재로 활용되는 셈이다.
최근 3세 경영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경제’와 ‘경영’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일자리 창출에 힘써 달라”며 당부했다. 선대 경영인이 일군 밭을 메마르게 하지 않는 것도 이들이 안은 부담이다.
기로에 선 3세 경영인의 행보에 세간의 시선이 쏠려 있다. 이투데이는 자산총액기준 40대 그룹의 3세 경영인 50명을 입체 분석한다. 오너 3세 중 일부가 이미 경영 일선에서 퇴진한 두산과 3세가 그룹 경영을 총괄한 지 10년 이상이 된 LG와 GS, CJ는 4세를 대상으로 분석했다. 최태원(56) SK그룹 회장의 차녀 최민정(24) 해군 소위처럼 기업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재계 3세는 제외했다. 또 오너가 없는 포스코, KT, 대우조선해양과 1~2세가 그룹을 경영 중인 동부, 미래에셋 등은 포함하지 않았다.
◇재계 3세 평균나이 40세, 입사 후 5년 7개월 만에 임원 달아= 국내 40대 그룹의 3세 경영인 50명의 평균 나이는 40.7세로 나타났다. 이들이 지금까지 재직한 기간의 평균은 11년 11개월이었으며 입사 후 평균 5년 7개월 만에 임원에 올랐다.
3세 경영인 중에는 박정원(54) 두산 및 두산건설 회장이 가장 나이가 많았다. 박용곤(84) 두산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2009년에 두산건설 회장, 2012년 두산 지주 부문 회장에 각각 올랐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가 4세 중에서 유일하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재계에서는 박정원 회장이 박용만(61) 두산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을 총괄할 것이란 전망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가장 나이가 적은 오너 3세는 최태원 회장의 장녀 윤정(26)씨다. 윤정씨는 아직 SK그룹 계열에 입사하지 않았지만, 올 상반기 경영컨설팅 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 들어가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윤정씨도 다른 오너 2~3세처럼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고 인맥을 넓힐 수 있는 컨설팅 회사에서 경영수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서경배(53)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장녀인 민정(24)씨, 구본걸(59) LF 회장의 조카인 민정(26)씨가 현재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하고 있다. 조현상(45) 효성 부사장도 베인앤컴퍼니를 거쳤다.
박현주(58)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차녀인 은민(23)씨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재직 중이다. 정몽준(65)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장남 정기선(34) 현대중공업 상무와 박용만 회장의 차남 박재원(31) 두산인프라코어 부장, 고(故) 박정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철완(38) 금호석유화학 상무, 구본준(64) LG전자 부회장의 장남인 구형모(29) LG전자 대리도 BCG를 거쳤다.
◇임원 초고속 승진… 임원으로 입사는 7명= 후계자의 초고속 승진 공식은 깨지지 않았다. 이들 3세 경영인의 임원 승진 평균 연한은 입사 후 5년 7개월이었고, 곧바로 임원으로 시작한 인물은 7명이다.
박주형(37)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재벌가에서 가장 최근 임원으로 입사한 사례다. 박찬구(68)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장녀인 박 상무는 지난 7월 1일 구매와 자금부문 담당 임원에 선임됐다. 금호그룹 69년 역사에서 오너가의 여성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박용만 회장의 장남 박서원(37) 오리콤 광고총괄 부사장도 그룹에 임원으로 합류했다. 박 부사장은 독립광고회사인 빅앤트를 운영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두산그룹의 광고계열사 오리콤의 크리에이티브 총괄 부사장에 선임됐다.
정용진(48) 신세계 부회장, 정유경(44) 신세계 부사장, 이해창(45) 대림코퍼레이션 부사장, 이우현(48) OCI 사장 등도 임원을 단 채 그룹 경영에 뛰어들었다.
입사 1년 만에 임원을 단 재벌 3세도 5명이나 된다. 정의선(46) 부회장은 1999년 현대차 구매실장으로 입사했다. 그는 이듬해 이사로 승진하면서 현대차그룹의 후계 구도를 확고히 했다. 효성가의 조현준(48)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 현대백화점그룹의 정지선(44) 회장과 정교선(42) 부회장도 입사 이듬해에 임원에 올랐다.
임원 승진이 가장 오래 걸린 3세 경영인은 박용성(76) 전 중앙대 이사장의 차남 박석원(45) 두산엔진 부사장이다. 그는 1994년 두산그룹으로 입사한 뒤 2008년에 두산중공업에서 상무가 됐다. 오리콤의 박서원 부사장을 제외하면 두산가 4세가 입사 후 임원이 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9년 4개월로 다른 재벌에 비해 긴 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은 경영에 참여한 3세만 해도 6명이 된다”며 “그보다 갑절이 넘는 4세들의 재목을 가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업무를 장기간 맡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중동 경영수업, 입사 4년 이하는 8명= 재계 3세 중에는 이제 막 경영 수업의 첫발을 뗀 이들도 8명에 달했다.
김승연(64)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동원(31)씨는 지난해 3월 한화L&C(현 한화첨단소재)로 입사했다. 금호석유화학 박주형 상무도 올해 그룹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2013년에 입사한 오너 3~4세로는 이재현(56)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27) CJ 사원,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부장이 있다. 현정은(61) 현대그룹 회장의 차녀 정영이(33) 현대상선 대리는 2012년 언니 정지이(39) 전무가 근무하는 현대U&I에서 그룹 경영의 첫 걸음을 뗐다. 이재현 회장의 장녀 이경후(32) CJ오쇼핑 과장은 2011년 CJ 기획팀 대리로 입사했다.
한 대기업의 기획팀 관계자는 “2010년 이후에 입사한 오너 3~4세들은 2020년 이후에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그룹의 체질의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