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중앙은행이 ‘긴축과 완화’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9년 이상 유지해온 초저금리 기조 탈출을 저울질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 유럽 등 다른 중앙은행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추가 경기부양책을 펼쳐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다.
일본 경제가 올여름 경기침체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일본은행(BOJ)은 6~7일 이틀간 열리는 금융통화정책결정회의에서 추가 완화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논의할 전망이라고 5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 2분기 연율 마이너스(-)1.2%에 이어 3분기에도 -1%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BOJ가 추가 완화를 단행한 지난해 10월과 비슷한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 8월 신선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전년 동월 대비 0.1% 하락해 물가상승률이 2년 4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며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BOJ가 현재 80조 엔(약 778조원) 규모인 본원통화 공급 규모를 더 확대하거나 시중은행이 BOJ에 예치한 지급준비금 초과분에 부담하는 초과지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양적완화 조치를 확대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위기가 지난 7월 극적으로 수습됐다. 그러나 신흥국 경기둔화와 지난 8월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 속에서 인플레이션 하락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 문제다.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유로화 가치가 올라 물가상승률을 떨어뜨리고 유럽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
유로존의 지난 9월 CPI는 전년보다 0.1% 하락했다. ECB의 물가안정 목표는 2%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달 “필요하다면 양적완화를 2016년 9월 이후에도 계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자들은 올해 남은 10월 22일과 12월 3일 두 차례의 회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기둔화의 수렁에 빠진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은행(WB)은 이날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7.1%에서 6.9%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해 11월 이후 지금까지 다섯 차례나 금리를 낮췄으나 추가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도 연내 금리인상설이 점점 후퇴하고 있다. 금리인상이 미뤄질 것이라는 기대로 이날 뉴욕증시는 1% 후반대의 급등세를 보였다. 블룸버그통신 집계에 따르면 미국 선물시장에서 트레이더들은 연준이 이달 FOMC에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을 10%로 점쳤다. 트레이더 대부분이 내년 3월까지는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지난달 24일 연설에서 연내 금리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멕시코와 터키 등 신흥국 중앙은행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화 강세로 자국 통화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에 대응해 금리를 올려야 할지, 아니면 중국처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반대로 금리를 낮춰야 할지 결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