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복지 수요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현재와 같은 증세 없는 복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증세 없는 복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지만 정부는 복지 규모 축소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를 통해 “지금은 기업의 투자를 늘려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지, 법인세를 올려서 가뜩이나 안 하는 투자를 줄이고 (기업을) 해외로 나가게 할 때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 정책은 구조조정을 통한 복지 규모 축소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실제로 최근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전업주부 자녀 어린이집 이용시간 제한 정책도 같은 맥락이다.
복지부는 최근 0∼2세 자녀를 둔 전업주부가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 이용 시간을 하루 6∼8시간가량으로 제한하고, 추가로 이용할 경우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올해 초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한 후 문형표 당시 장관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업주부가 불필요하게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수요를 줄이겠다”고 말했다가 전업주부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전업주부에게 불이익을 줄 의도는 없다”고 진화한 바 있다.
지난 5월 말 통과된 공무원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다. 공무원단체의 극렬한 저항에 부딪혀 한동안 공전하던 연금개혁 대타협기구는 3월 말 종료되면서 4월 실무기구로 사실상 연장 운영된 끝에 5년에 걸쳐 연금 기여율(보험료율)을 7%에서 9%로 올리고, 지급률(연금 지급액을 결정 비율)을 20년에 걸쳐 1.9%에서 1.7%로 내리는 합의안을 지난 2일 도출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내년부터 70년간 333조원 재정절감 효과를 거두게 되는 등 보편적 복지 축소를 통한 ‘증세없는 복지’를 차근차근 이끌어 가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를 지지하는 전문가들 또한 이 같은 추세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복지 지출은 재정이 더는 감당할 수 없다”며 “무상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복지정책이 이대로 간다면 그리스, 아르헨티나와 같은 나쁜 선례를 따라가는 셈”이라며 “복지가 많으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조세수입이 줄며 재정적자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홍기용 한국세무학회장도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선심성으로 베푸는 포퓰리즘 정책이 문제”라며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이 주는 보편적 복지를 축소하고 맞춤형, 선택형 복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증세 카드를 꺼내들기보다 불필요한 복지 지출을 줄여 세금 누수를 막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증세 없는 복지는 응급요법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위한 재정여건 마련이 시급하다는 견해도 있다.
우리나라의 세금과 사회보험료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국민부담률(2013년 24.3%), GDP대비 사회복지지출(2014년 10.4%)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해 세수 부족이 11조원에 이르며 내년까지 4년째 재정난이 예고된 상황이다.
경기대 이재은 명예교수는 “최근 7년,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3년을 보면 세입·세출 예측이 부정확하다. 경기 예측을 낙관적으로 해 정책 공약을 합리화하고 그렇게 해서 세입이 부족해지면 추경을 동원해 국가채무를 늘린다”면서 “결국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증세를 통한 복지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증세는 결국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보고 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재정이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증세를 안 하면 일본처럼 국채 발행으로 (증가하는 복지지출을) 메워야 하는데 이는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며 증세 주장에 힘을 실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도 “복지 지출을 늘리려면 증세밖에 방법이 없다. 증세없는 복지는 처음부터 신빙성이 없었다”며 “모든 사람이 조금씩 더 세금을 내는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