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쪽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전혀 딴 세상이 펼쳐진다. 천장에서 무려 100만개에 달하는 전구가 번쩍번쩍 거리는 것부터 장관이다. 그 아래로는 30여개의 괴물 같은 크레인들이 무빙 레일을 타고 수십 톤에 달하는 물건들을 휙휙 옮긴다. 시선을 더 낮춰 바닥으로 향하면 동서남북으로 수백 대의 자전거와 이동차가 쉴 새 없이 돌아다닌다.
미국 디즈니랜드나 한국 덕수궁을 온전히 그 안에 담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이곳은 바로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 에버렛에 위치한 보잉 에버렛공장.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기자는 꼬박 하루동안 이 공장을 둘러봤다.
◇ 기네스북 오른 세계 최대 공장의 하루는 = 1968년 완공된 에버렛공장은 지난달 30일 47세가 됐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공장의 크기가 가로 1.1km, 세로 500m, 높이 35m(아파트 11층)나 된다는 점이다. 덕분에 이 공장은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규모 공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크기가 이렇게 가공할만하다보니 이동차를 타고 달려도 끝조차 가늠되지 않을 정도다.
24시간 쉴새 없이 돌아가는 이곳에서는 하루 최대 1만5000여명이 작업을 한다. 이들아 매일 조립하는 비행기는 약 12대(대형, 소형). 하루 12대를 만든다는 건 이 공장 안에 총 12대의 비행기가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달 동안에는 등 18대의 비행기(B747ㆍB787ㆍB777)가 완성돼 나간다.
특히 대한항공이 주문한 다섯 번째 B747-8i(여객기)도 현재 이 공장에서 조립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세계 최초로 여객기(B747-8i)와 화물기(B747-8F)를 모두 운영키로 한 항공사다.
B747-8i는 1990년대 보잉의 성장을 주도한 점보기 B747-400보다 소음은 30% 줄이고, 연료 효율은 16% 늘린 차세대 항공기다. 공장에서 B747-8i 1대가 완성되기까지 4개월이 걸린다. 약 600만개 부품이 조립돼 완성체가 탄생하기까지의 지난한 작업이 이뤄지는 기간이다.
이동차를 타고 작업장을 다니다 보면 재미있는 광경도 곳곳에서 보인다. 세탁소ㆍDVD대여점ㆍ영화매표소ㆍ마사지샵 등 없는 게 없다. 미국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인 털리스도 3군데나 보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중 한 군데는 전 세계에서 매출 1위라는 점이다. 또 직원 수가 많다 보니 화장실 70개, 식당 6개, 세발 자전거 500대 등 시설 규모도 상당하다. 최고령자인 68세 직원도 보인다.
마이크 머레이 공장 VIP투어 담당 매니저는 “보잉의 지난해 총 인도량은 600대로 올해는 750대까지 늘어날 것”이라며 “특히 에버렛공장 작업량이 많아 매달 B747-400 화물수송기 4대를 채울 만한 재료를 재활용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공장을 나서면 곧 인도될 비행기들이 대기하고 있는 ‘Flight Line’이 펼쳐진다. 이곳은 총 37대 비행기를 세워둘 수 있으며 하루에 5~6대가 인도된다. 한켠에는 대한항공에 인도될 747-8i 2대(2호기, 3호기)가 늠름하게 서 있있다. 이 중 2호기는 기자가 이곳에 들른 지 이틀만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한국으로 인도됐다.
◇ 모든 기내 시설을 직접 체험하고 바로 구매 = “뚝딱 뚝딱!! 음식 냄새 나요? 아..조리할 때 소음이 좀 심하네요.”
이곳은 일반 부엌이 아니다. 승무원들이 기내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갤리도 아니다. 바로 전 세계 항공사들이 모여 B787 갤리에 필요한 600여개 달하는 모든 장비들을 테스트하고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보잉은 9년 전, 디즈니랜드와 함께 창사 이래 처음으로 기내에 들어가는 모든 인테리어를 직접 체험하고 바로 구매까지 할 수 있는 B787 드림라이너 갤러리를 만들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150여개의 부품 협력업체들이 에버렛공장 인근에 아웃렛을 형성, 제품들을 전시한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시작되는 갤리 파트 입구에 787 고객사 별 항공기 모형이 나열돼 있다. 이날은 기자가 방문한 기념으로 대한항공 모형을 제일 앞에 배치해뒀다. 대한항공은 B787를 10대 주문한 우수 고객사다.
옆에는 앞서 설명한 갤리 쇼룸 입구가 보인다. 이곳은 실제 크기와 같은 갤리 블럭이 갖춰져 있어 제품들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다. 화장실도 보인다. 장애인용, 여성전용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체크 가능하다.
이어 좌석 쇼룸이다. 이곳은 레일이 깔려 있어 좌석 간격 조절이 가능하다. 스마트폰의 터치 기능을 접목해 쉽게 좌석을 조절할 수 있는 1등석도 보인다. 좌석 쇼룸 옆 방은 실제 기내 내부 모습을 그대로 연출했다. 이곳이 흥미로운 이유는 기내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모두 직접 해볼 수 있는 곳이라는 점. 실제로 보잉 직원들이 이틀 간 잠자고 음식을 먹으며 직접 조사 분석도 했다고 한다.
B787은 보잉이 최초로 복합소재를 적용한 친환경 항공기로 무게는 줄이고 연료 효율은 높였다. 창문은 787만의 자랑거리다. 창문 덮개를 없앤 것. 승객들은 창문을 여닫는 대신 전자식 버튼으로 조명 밝기를 조절할 수 있다. 창문 크기도 기존 대비 30%까지 늘려 어느 좌석에서도 창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덮개가 없어 승무원들이 이착륙 시 “창문 닫아주세요”라고 외칠 필요도 없다. 또 동체 부분을 나사 없이 하나의 큰 조각으로 제작해 무게도 줄었다.
댄 올슨 갤러리 매니저는 “787은 지금까지 60개 고객사로부터 총 1065대가 판매됐다”며 “이는 3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규모로 판매 속도가 가장 빠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잉은 향후 30~40년이 지나 787이 폐기될 경우 재활용 과정에 대해 전 세계 회사들과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