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 최우선 전략’을 앞세워 신격호 총괄회장 등장으로 반전 국면에 접어든 ‘형제의 난’을 타개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또다시 불거진 형제간 경영권 분란에 흔들리지 않고, 책임경영을 실천한다는 의미로 면세점 수성(守城)을 위한 여론전에 직접 뛰어들었다.
신 회장은 12일 인천 운서동 롯데면세점 통합물류센터에서 언론 간담회를 열고 롯데면세점의 ‘상생 2020’ 비전을 직접 선포했다. 이날 발표된 상생 2020은 향후 5년 동안 롯데면세점이 사회공헌 및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위해 상생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막대한 투자에 나서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계열사 대표가 아닌 그룹 총수가 특정 사업 계획을 직접 밝힌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신동주 SDJ코포레이션 대표(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와 차별화를 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최근 신 총괄회장이 장남인 신 대표를 후계자로 지지한다는 뜻을 밝히며, 신 회장과 소송을 통해 전면전을 벌일 것임을 시사했다. 앞서 롯데가(家)의 경영권 분쟁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들이 신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신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설이 일부 해소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무엇보다 롯데그룹 내부에서 신 총괄회장이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그의 진정성 있는 의중이 이번 사태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에 신 대표가 신 총괄회장을 내세워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면서 향후 신 회장 측이 어떤 반격 카드를 들고 나올지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는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한 지난 8월부터 예고된 것이지만, 서울시내 면세점 심사가 진행 중인 민감한 시기에 터져 나와 재승인 심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총수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여론이 악화할 경우 올해 만료되는 소공점, 잠실 월드타워점 면세점 수성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이날 신 회장이 계열사 중 하나인 롯데면세점 유치전에 직접 나선 것도 면세점 수성이 그룹 경영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실제로 롯데면세점은 한국 롯데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호텔롯데의 매출 8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이 중 한 해 매출의 절반 이상인 2조6000억원이 이번에 만료되는 면세점 두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호텔롯데가 한국 롯데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 회장이 두 면세점을 잃을 경우 그룹의 지배권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또한 면세점 수성에 실패할 경우 향후 호텔롯데 상장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앞서 롯데그룹은 7조원을 들여 10월까지 롯데그룹 순환출자의 80%를 해소하고,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호텔롯데를 내년 상반기 중 상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 회장이 지난 8월 신 전 부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겪은 직후 밝힌 대로다.
이홍균 롯데면세점 대표는 “호텔롯데 법인의 매출과 영업이익의 85% 정도가 롯데면세점에서 나오는데 만약 롯데면세점이 다시 특허를 받지 못하면 (호텔롯데의)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이렇게 되면 누가 호텔롯데의 주식을 사려고 하겠는가. (IPO 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