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지역대표 vs 비례대표

입력 2015-10-1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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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선거구 획정이 법정기일을 넘겼다. 여야의 시각 차이가 워낙 커서, 타협의 여지가 협소하기 때문이다. 여야의 입장 차이를 보면 이렇다. 여당의 경우는 비례대표를 줄여 농어촌 지역구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야당의 경우는 비례대표라는 직능 대표성을 줄여서는 안 되고 사표 역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야당의 논리가 맞다. 직능 대표성이 강화되는 것은 다원화되는 지금의 사회적 추세와 들어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적 당위성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여태까지의 비례대표의 공천과정을 볼 때, 직능대표성보다는 당 지도부의 ‘필요성’이 공천에서 더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은 비례대표 축소 반대 주장에 앞서 지금까지의 비례대표 공천 관행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당의 주장은 어떨까? 비례대표를 줄여서라도 농어촌 지역구의 숫자를 유지하는 것이 맞을까?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획정 결정의 취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최소 선거구의 인구 수와 최대 선거구의 인구 수의 차이를 두 배가 넘지 못하도록 결정한 이유는 이른바 표의 등가성과 지역 대표성의 강화라는 취지로 보면 타당할 듯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 대표성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중앙 정치로의 접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지자체의 재정적 독립성이 취약한 나라에서는 중앙정치로의 접근 통로의 확보가 지역 문제 해결과 지역 목소리 전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 대표성은, 단순히 해당 지역의 대표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의 대표성도 가질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농어촌은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정보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라고 하더라도,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 이런 정보 전달 수단에 익숙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교통수단을 이용하기에 용이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에 사는 노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려면, 아무래도 ‘고전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고전적 방법이란 자신의 지역구 의원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일 지금보다 농어촌 지역구를 더 넓혀 버리면 이들의 의사전달 기회는 현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농어촌 지역구의 축소는 단순히 지역 대표성이 훼손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별 정보 격차에 따른 특정 세대의 이익 반영의 기회도 축소됨을 의미한다. 반대로 중앙정치로의 접근 통로가 비교적 원활한 서울·수도권의 경우는 오히려 지역구가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이렇게 되면 도·농 간의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선 정치권이 결정을 해야 한다. 정치란 공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축소하기 위해 뭔가를 결정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지금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할 때라는 것이다. 정치권이 해야 할 결정은 간단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역과 세대 간의 대표성 격차를 더욱 늘리느냐, 아니면 비례대표의 숫자를 줄일 것인가를 결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일정 부분 정치권의 희생이 필요하다. 당 지도부가 자기 사람 심는 기회를 좀 축소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이 그런 희생의 결단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문제는 더 꼬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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