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헤이스팅스(Paul Hastings) 한국지사 김종한(53) 대표는 지난 8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순진한 한국기업에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그는 최근 미국 내에서 증가하고 있는 한국기업을 상대로 한 거액의 소송을 우려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198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미국 법원에서 한국기업을 대변해온 국제변호사다. 지난 5월 종결된 코오롱-듀폰을 비롯하여 SK하이닉스-샌디스크, 롯데케미칼 영업비밀침해소송 등 그가 맡은 굵직한 사건만 해도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미국에 본사를 둔 폴 헤이스팅스는 2012년 김 대표를 주축으로 한국지사를 설립했다. 폴 헤이스팅스의 스무 번째 지사이자 아시아의 다섯 번째 지사였다. 그는 “과거에는 한국기업이 미국에 진출하려면 임원들이 출장을 통해 미국 로펌의 자문을 받고 돌아오는 수고를 반복해야 했다”며 “한국 지사가 설립된 후 시간적· 공간적·언어적 제약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외국기업이 한국에 진출할 때 국내 로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리하듯, 한국기업이 미국에 진출할 땐 현지법과 상황을 잘 아는 현지 로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 그는 자문이 아닌 송무에서는 국내 로펌과 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소송을 축구 경기에 비유하자면 미국 로펌이 현지에서 수비하는 동안 한국 로펌은 국내에서 역공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실제 한국기업이 현지기업에 소송을 당했을 때, 한국에서 맞고소하는 방법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소송 이야기가 나오자 김 대표는 “최근 한국기업을 겨냥한 미국기업과 검찰의 처벌 의지가 뚜렷해졌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한 미국 정부의 정책이 러시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지나치게 미국 시장에 의존하는 한국기업의 수출 지향적인 영업 전략도 한몫했다.
김 대표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소송과 가처분으로 경쟁기업을 견제하는 일이 다분하다고 설명했다. “미국기업은 소송을 하나의 사업 수단으로 봅니다. 그들의 법무팀은 합의금을 받아 회사의 매출을 창출해내는 수익부서인 셈이지요.” 반대로 말하자면 철저한 대비 없이 미국 시장에 발을 디뎠다가는 도리어 현지기업들의 소송 폭격을 맞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한 김 대표의 조언을 들어봤다. 그는 먼저 경쟁기업의 소송 패턴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기업들은 FBI, CIA 출신 직원을 고용해서 경쟁 기업을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과거 그들이 누구에게, 어느 시점에, 어떤 소송을 제기해서, 어떻게 합의했는지 등을 분석해야 합니다.” 내부감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적어도 미국 진출 1~2년 전에는 현지 준법 시스템에 맞춰 회사 자신을 스스로 검열하고 개선해야 합니다.” 그는 문서보관제도 도입, 경쟁기업 영입인사 확인 등 사소한 것에 대한 점검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대부분의 한국기업이 해외 진출을 준비하며 좋은 품질의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파는 것만 고민한다”며 “현지 로펌의 자문을 받지 않고 일을 진행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