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회-기획소송] “소액주주 권리구제”“변호사 배만 불려”

입력 2015-10-1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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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소송, 빛과 그림자

“예전에는 소위 ‘말이 되는 사건’이라야 소송이 진행됐는데, 지금은 일단 소장을 내고 본다.”

기획소송이 남발되는 현상을 지켜본 한 중견 변호사의 평가다. 변호사 수가 적었을 때는 승소 가능성을 검토한 뒤에야 본격적인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하지만 업계 불황으로 인해 이제는 먼저 소송부터 내고 보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대법원 통계를 비교해 보면 이런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민사사건에서 원고가 한 푼도 받지 못한 사건은 4만663건에 달한다. 10년 전인 2005년에는 2만7466건으로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기획소송 증가, 각종 부작용 생겨=변호사업계 불황과 맞물려 기획소송이 증가하는 이유는 소액으로 다수의 참가자를 유도하면 소송 승패와 관계없이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소송이 일반인들에게 깊게 각인된 사례로는 과거 옥션 정보유출 사건이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2008년 한 중소 로펌이 옥션 회원정보 유출 책임을 묻겠다며 소송인단을 모집했는데, 인터넷 카페를 통해 참가자가 급증하자 다른 개인변호사나 법률사무소들도 유사한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며 소송이 산발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끝은 좋지 못했다. 옥션 정보유출 소송을 처음 기획했던 로펌은 무려 14만6000여 명의 당사자를 모집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3만원을 내면 승소 시 20여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에 이끌려 소송에 참여했지만, 7년여를 끌었던 소송은 원고측 패소로 확정됐다. ‘변호사 배만 불린다’는 우려가 현실화됐던 사례다.

대구 공군비행장 소음피해 책임을 묻겠다며 진행된 대규모 소송은 승소를 했는데도 변호사와 원고들 사이에 분쟁이 생겼던 사례다. 당시 수백억원의 배상금을 받아낸 한 변호사는 제때 소송 참가자들에게 돈을 지급하지 않아 거기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을 고스란히 챙겼고, 이와 관련해 민사소송이 진행되는 것은 물론 횡령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이 이뤄지기도 했다.

◇기획소송 증가, 순기능도=하지만 이러한 기획소송은 과거 소송을 내지 못했던 이들의 권리구제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순기능도 존재한다. 소액주주들이 분식회계 책임을 묻는 사례가 증가하는 게 대표적이다. 또 소송 자체가 이슈화되면서 사회 전반적인 권리의식이 향상되는 효과도 있다. GS칼텍스나 KB국민은행 정보유출 사건에서는 개인정보에 대한 보안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고, 애플 불법 위치 정보 수집에 관해 단체소송이 기획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계기도 됐다.

기업들도 전에는 사소하게 여겼던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입장이다. 과거 정보유출로 인해 기획소송을 당했던 한 인터넷 업체는 보안솔루션을 새로 개발하고 관련 인력도 대폭 확충했다. 부실감사 책임을 묻는 소액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해 수백억원을 물어줬던 한 대형 회계법인도 감사업무 인력을 2배로 늘리고, 감사절차 검토도 사전과 사후 2중으로 체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섣불리 참여했다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의 이력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과거 소송을 모집했던 카페나 인터넷 사이트 검색을 통해 ‘승소’가 아닌 ‘참가비’가 목적인 변호사를 걸러내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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