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가격에 대한 단상

입력 2015-10-1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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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본듯한 디자인의 중국 폭스콘 출신 제품이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낳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SK텔레콤과 TG앤컴퍼니의 합작인 스마트폰 ‘루나’ 열풍에 대한 이야기다. 루나의 가성비 전략이 신의 한 수였던 것은 분명하다. ‘적당히 덜어내는 것’은 우리나라 스마트폰 시장에서 정말 보기 힘든 미덕이니까. 모두가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한 스펙의 스마트폰을 연구하는 동안, 루나는 적당히 덜어내기에 주력했다. 너무 덜어냈다간 이른바 ‘효도폰’이라 불리는 저가형 스마트폰이 되어버린다. 가성비를 논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성능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 절묘한 선을 지켜야 한다. 메이저 제조사의 하이엔드 제품보다는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은 가벼운 가격으로 커버한다. 이게 루나의 전략이었다.

훌륭한 성능에 합리적인 가격, 모델인 설현의 물오른 미모까지 더해져 루나는 순조롭게 입소문을 탔다. 디자인 카피에 대한 논란은 피할 수 없겠지만, 소비자들은 그마저도 반겼다. 이 가격에 애플의 디자인을 얻을 수 있다면 가성비로 유명한 중국의 샤오미보다도 낫다며 루나를 옹호하는 세력마저 보일 지경이었다.

무엇이 매섭기로 소문난 한국 소비자를 이토록 너그럽게 만든 것일까? 아마 우리는 지쳐있었던 것 같다. 24개월 약정 기간에 걸쳐 할부로 납부해도 부담스러운 단말기 가격과 최신 고가 스마트폰만 권유하는 판매점 행태에 말이다. 이통사가 단말기 가격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유통 구조 때문에, 기기를 저렴하게 판다는 핑계로 10만원 대 요금제를 덤터기 쓰는 일도 흔했다. 더러는 보조금 대란에 편승해 ‘반짝 가격’에 최신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요행을 누리기도 했지만, 차별적 행운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이었다. 카카오톡만 쓰는 사람도 있고, 스마트폰으로 인생의 대서사시를 쓰는 사람도 있는데 판매점에 가면 필요 이상으로 몸값 비싼 녀석들만 누워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루나를 비롯해 갤럭시A 시리즈, 화웨이 X3, LG 클래스 등 다양한 중저가 스마트폰이 준비돼 있다. 현재 출시 대기 중인 리스트도 빵빵하다. 구글의 레퍼런스 제품인 넥서스5X와 레노버의 6.8인치 패블릿 팹플러스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제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저렴한 가격을 매력으로 내세운다. 단통법 시행 이후의 긍정적인 효과이기도 하고, 스마트폰 스펙이 상향평준화되며 소비자들이 이에 대한 감흥을 잃자 제조사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시작한 결과이기도 하다.

중저가 스마트폰 라인업 확대는 정말이지 반가운 소식이다. 갤럭시 아니면 아이폰 밖에 없었던 단조로운 시장이 다채로워진다면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이 같은 트렌드가 하향평준화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 전 LG V10이 놀라운 기능과 겸손한 가격으로 시장 데뷔를 알렸다. 삼성의 플래그십 제품인 갤럭시S6도 출고가를 내렸다. 예전 같으면 보기 힘든 진풍경이다. 이 와중에 아이폰6S의 가격이 공개되며 뭇매를 맞았다. 애플은 본래의 가격 정책을 고수했지만 환율 변화로 한화 기준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루나의 가성비를 거론하며 갤럭시S6는 가격을 더 내려야 하고, 아이폰은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이 대목에서 씁쓸함을 느꼈다. 스마트폰 시장에 훌륭한 중저가 제품이 늘어나면, 다양한 수요를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중저가 제품의 맹활약이 고가 제품을 향한 비난으로 이어질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누군가는 루나에 만족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루나 이상의 제품을 원한다. 그렇다면 이 제품들 사이에는 필연적인 가격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제품 라인업이 다양하다면, 가격대도 다양해야 한다. 최고의 제품에 최저의 가격을 원한다면 시장은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한 브랜드의 기술력이 총동원된 프리미엄 제품일지라도 시장 적정가 이하의 ‘공짜폰’으로 구입하지 않으면 ‘호갱’이라 부르는 것은 이 도시의 괴담과도 같다. 보조금 대란 시절의 추억이 남긴 스마트폰 시장의 서글픈 이면이다. 며칠 기다리면 단말기 가격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신이 깔려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선 어떤 가격도 믿을 수 없게 된 것. 시가로 구입하는 랍스터도 아니고 매번 가격이 달라지다니. 애초에 신뢰할 수 있는 적정가를 제시했어야 하는데 보조금 경쟁에 휘둘리다 보니, 소비자는 혼란스럽고 제조사로서는 브랜드 가치를 깎아먹은 꼴이다.

소비자는 원하는 스펙의 제품을 본인의 예산에 맞게 구입할 권리가 있다. 합리적인 소비를 원하는 사람을 위한 중저가 제품과 기술력의 절정을 맛보고 싶은 얼리어답터를 위한 프리미엄 제품 모두 필요하단 얘기다. 제조사가 경쟁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찬성한다. 우리는 이제 믿을 수 있는 가격표를 원한다. 하지만 브랜드 고유의 가치와 세계 최고의 기술력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지 않을까. 충격적인 가격으로 유명한 중국의 샤오미를 예로 들어보자. 그들이 그토록 낮은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한 내수 시장 덕분인 동시에 제품 개발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절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많은 제조사에서 내놓은 아이디어와 기능, 디자인을 고민 없이 가져다 썼으니까. 우리는 ‘가성비’라는 명분 뒤에 숨어 있는 비화에 대해서도 인지해야 한다. 모두가 바라는 것이 엄청난 스펙에 저렴한 가격을 갖춘 카피 제품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리하여 스마트폰의 적정가는 얼마인가. 글쎄, 이건 소비자의 선택 만이 대답이 되겠다.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은 소비자의 적이다. 이와 동시에 물건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배제한 채 무조건 가격 인하를 외치는 것 역시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인 다양성이다. 모든 제품이 저렴해야 한다거나, 모든 제품이 비싸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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