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리칼럼] 기업사회공헌, 판이 움직인다

입력 2015-10-1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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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권 코스리(한국SR전략연구소) 부소장

기업사회공헌, 일반인에겐 아직 친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과거엔 기업이 기업활동으로 발생한 ‘이익의 일부’를 기업 ‘이익과 무관하게’ 사회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사회공헌이라고 불렀다. 장학사업, 복지시설이나 단체, 비영리조직에 대한 기부와 임직원 봉사가 전통적인 사회공헌의 방식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개념이 조금 바뀌었다. 일단 사회공헌에 사용되는 예산이 기업 이익의 일부일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즉 기업이 ‘투자’라는 관점에서 사회발전을 고민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회공헌이 기업의 이익과 무관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건, 홍보효과가 있건, 기업 임직원의 조직문화가 좋아지건, 기업의 새로운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되건, 무언가 기업의 이익과 관련이 있어야 사회공헌이 지속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회공헌의 개념에 대해, 그리고 그것의 효과에 대해서는 늘 토론을 해야 한다. 사회공헌 예산이 자기 의지를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돈이 될 때,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공헌의 개념 변화를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데, 요즘 특히 주요한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2016년 기업사회공헌의 계획을 수립하는 시기인 만큼 이런 요소들을 체크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과 금융의 결합이다. 과거에는 사회공헌 예산을 사용하는 방법이 단순했다. 특정 단체에 기부를 하거나, 기업이 직접 사업을 집행했다. 기업이 직접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요즘은 이 방식에 더해 금융과의 결합을 고민해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사회성과연계채권(SIB)이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사회성과연계채권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시의 사회성과연계채권의 1호 사업은 운영기관이 선정되는 등 가시화되었다.

기존에 부처와 지자체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 복지기관과 시설에 직접 지원비를 집행했다. 그러나 사회성과연계채권은 이 과정에 ‘투자자’를 개입시킨다. 민간 투자자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자금을 운영기관에 투자한다. 운영기관은 이 투자금을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한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사회문제의 해결 정도를 측정한다.

만약 사회문제의 해결의 성과가 예상치보다 높다면 지자체와 부처에서 민간 투자자에게 투자자금과 인센티브를 되돌려준다.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의 성공이다. 만약 해결의 성과가 예상치보다 낮다면, 지자체와 부처는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의 실패다. 사회성과연계채권(SIB)은 다양한 장점이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사회문제해결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사회문제해결의 의지를 가진 민간투자자가 있느냐와 사회문제해결을 잘 할 수 있는 실행기관이 있는가, 그리고 이를 조율할 운영기관의 실력이 출중한가이다. 기업사회공헌이나 재단이 사회성과연계채권의 투자자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파트너십의 변화다. 과거에는 기업의 사회공헌이 금전 기부와 임직원 봉사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 기업사회공헌의 이해관계자는 다른 것들을 요청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회적기업은 기업이 단순한 일회성 기부를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기업의 역량을 강화시켜주기 위해 재능기부를 해주거나, 사회적기업 제품의 판로개척을 위해 기업이 내부의 자원을 활용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기업과의 협력으로 사회적기업 내부에 기업가정신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곳도 있다. 몇몇 사회적기업은 유통기업과의 협력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백화점에 입점하고 홈쇼핑에서 완판기록을 세우는 등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단순지원에 의지하던, 도와주어야 할 사회적기업의 이미지는 이제 과거의 것이 되었다. 기업의 상생과 동반성장의 파트너로, 그리고 사회적인 고용문제를 해결하며 혁신적인 방식으로 소외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세 번째는 글로벌이다. 기업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기업이 진출한 국가에서 사회공헌을 하는 것은 이제 관례가 되었다.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곳도 생겼다. 예를 들면 코이카(KOICA)는 기업이 해외에서 지역개발과 사회공헌을 함께 하며 비즈니스를 실행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만들고 있다. 코트라(KOTRA)는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잘 수행하면서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에 안정적으로 편입되고, 해외에서 비즈니스의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네 번째는 제대로 된 가치 창출이다. 요즘 비영리단체들은 사회문제해결을 위해 기업과 사회, 더 나아가 공공의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의제의 선정부터 기업의 참여와 평가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갑을관계식 파트너십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기업의 사회공헌은 ‘진정성’을 우선적인 가치로 여겼다.

그러나 그 진정성에 대한 해석은 달랐다. 아무도 모르게 선행을 하는 것이 진정성이라고 하는 기업도 있었고, 한 사업을 오래 하는 것이 진정성이라고 하는 기업도 있었다. 새로운 판에서는 기업이 실질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라는 것이 진정서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사회공헌이 어떤 거버넌스의 맥락 속에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이런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의 등장, SDG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의제들이 연일 기업사회공헌을 향해 질문을 던질 것이다.

기업과 기업사회공헌에게 우리 사회가 주문하고 있는 것은 ‘간절함’이다. 요식처럼 하는 사회공헌, 정부부처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땜질식 사회공헌, 사회공헌을 빙자한 마케팅은 가려내야 한다. 물론 기업의 사회공헌이 바뀌기 위해선 기업이 바뀌어야 한다. 세상은 그런 기업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이미 흘러가고 있다.

고대권 코스리(한국SR전략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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