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느낌있게, 리디북스 페이퍼 리뷰

입력 2015-10-19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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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읽고 싶어졌다. 가을병이다. 볼에 닿는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이렇게 꼭 감기처럼 책 타령을 시작한다. 손끝에서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넘어가는 종이책도 좋지만, 화장품과 온갖 잡동사니로 내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 무게를 생각하니 전자책이 답이다. 때마침 리디북스에서 전자책 단말기 페이퍼를 출시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돈 쓰기 좋은 핑계였다. 이것은 리디북스 페이퍼와 함께한 일주일의 기록이다.

(*본 리뷰는 기자가 사비로 리디북스 페이퍼를 구입해 이루어졌습니다. )

10월 7일(수) 조금 흐림: 그분이 오셨습니다

아마도 오늘 페이퍼가 올 거라 생각했다. 출시 당일, 페이퍼 품절 대란 속에서도 2분 만에 구매 성공한 나란 사람! 얼른 전리품을 내 손에 쥐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택배 아저씨가 사무실에 도착해 내 이름을 불렀을 땐, 나도 몰래 소리를 내질렀다. 황급히 포장을 뜯는다. 이 순간을 남기기 위해 사진도 찍는다. 찰칵찰칵. 시크한 무광 올블랙 박스에는 충전용 케이블(전원 어댑터는 없이 케이블만 준다)과 아주 간단한 설명서가 들어있다. 패키지가 애플스럽다는 생각을 잠시 한다.

전원도 켜기 전에 일단 손에 쥐어 봤다. 생각보다는 묵직하다. 무광의 매끈한 바디가 마음에 들었다. 손끝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고 촉촉하다. 상단의 버튼을 눌러 전원을 켠다. 순간 번쩍하며 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페이퍼가 눈을 깜박인다.

사용설명서는 읽을 필요 없다. 버튼도 몇 개 없다. 화면 아래쪽에는 홈 버튼이 있고, 위쪽에는 리디북스를 재우거나 깨울 수 있는 버튼이 있다. 화면 양쪽의 버튼은 각각 전 페이지와 다음 페이지로 넘길 때 사용한다. 이 버튼은 페이퍼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 중 하나다. 물론, 화면의 영역을 터치해서 페이지 이동도 가능하다.

[좌: 프론트 라이트를 끈 화면 / 우: 최대로 밝기를 조절한 화면] 

소프트웨어는 리디북스 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리디북스를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더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거다.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그동안 산 책을 서둘러 다운로드한다. 70권 정도의 책이 서재에 차곡차곡 쌓인다. 기본 메모리는 8GB로 고화질의 만화가 아니라면 일반책은 약 800권 정도 저장 가능한 용량이다. 이 정도면 나에게는 충분하다. 혹시 부족하면 32GB의 마이크로 SD 메모리도 추가할 수 있다.

아직 첫 만남이니 너에 대해 모든 것을 욕심내진 않겠다. 그래도 시험 삼아 몇 권의 책을 펼쳐 본다. 아이패드의 재빠른 속도에 익숙해져서인지 페이퍼의 반응 속도는 인내심을 요했다. 손가락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고, 책을 구성하는 데도 몇 초 정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특히 구입한 책들이 모여 있는 ‘내 서재’ 화면에서 책을 고르기 위해 스크롤을 내릴 때 힘들다. 꼭 잘 따라오지 않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것처럼 마음이 답답하다. 앞으로 책이 더 많아지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 이 제품은 212PPI의 페이퍼 라이트 버전이다. 화질이 많이 차이 날까봐 걱정 많이 했는데, 만화를 열어보니 딱히 화질에 대한 불만은 없다. 나 같은 입문자는 라이트 버전으로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8만 9000원(1만원 할인 쿠폰을 적용해 결국 7만 9000원에 산 셈이다)이라는 가격이 참 라이트 하니까.

10월 9일(수) 맑음: 읽다가, 읽다가… 스르륵

매일 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에 조금씩 책 읽는 풍경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왜 미국 영화에서 보면 나란히 누운 커플이 각자 책을 읽다가 스탠드를 끄고 잠들지 않던가. 그런데 내 침대 옆에는 스탠드가 없다. 잠자리에서 책을 읽기 위해서는 눈부신 형광등 불빛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페이퍼가 있으니까. 조명 하나 없이 불 꺼진 방에 누워서도, 내 전자책은 은은하게 빛을 낸다. 세수를 마친 후, 얼굴에 마스크팩을 얹고 침대 위에 자리를 잡는다. 리디북스 UI의 가장 큰 장점은 책을 읽다 본문 화면에서 바로 밝기 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가락을 위로 올리면 화면이 밝아지고, 아래로 내리면 어두워진다. 아주 쉽다. 물론 이 UI는 페이퍼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이상하게도 만화책에서는 이 기능이 먹히지 않는다. 너무 당연하게 손가락을 놀렸다가 안 돼서 당황했다.

페이퍼는 12단계로 글자 크기를 조절할 수 있고, 다양한 폰트를 지원한다. 개인적으론 가독성 좋은 기본 폰트를 선호해 따로 글꼴을 설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6개의 기본 폰트 중 ‘KoPub 바탕체 Bold’가 가장 좋았다.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봐도 깨지지 않고 잘 보이더라. 열페이지 쯤 넘기니 스르륵 잠이 오기 시작한다. 손에 들고 있던 페이퍼를 옆에 두고 바로 잠자리에 든다.

10월 8일(목) 구름 & 쌀쌀: 아름다운 연휴의 시작이에요

리디북스가 내 손에 들어온 지 이제 이틀째다. 내 서재 속 책도 늘어났다(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새로 산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다른 책을 또 사는 버릇은 전자책이나 종이책이나 계속된다).

페이퍼는 일단 눈이 편안했다. 많이 어두운 곳이 아니고서야 프론트 라이트를 모두 끈 것을 선호하는데, 정말 종이에 인쇄된 글씨를 보는 것 같다. 어쩜 이렇게 글자가 화면에 딱 붙어 있는 느낌이 들지? 이번 기회에 전자잉크에 대해 공부를 좀 했다. 전자잉크는 e-paper라고 부르는 두 개의 패널 사이에 있는 검은색과 하얀색 캡슐이 전기 자극에 따라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원리다. 처음 전기 자극을 줘서 캡슐을 배열하면 다른 배열로 바뀔 때까지 추가로 전기를 쓰지 않아 전력 소모가 매우 적은 것이 장점이다. 입자가 실제로 배열되기 때문에 패널보다 밝은 빛이 들어오는 낮에도 화면이 안 보일 일이 없다.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제품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 화면 터치는 거의 하지 않는다. 물리 버튼을 누르는 게 훨씬 편리하다. 일단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지 않아 좋고, 페이퍼를 손에 쥐면 엄지손가락이 딱 버튼에 닿는다. 버튼이 조금 헐거워서 딸깍하는 소리가 나지 않고 겉돈다는 것 빼고는 만족스럽다. 물리 버튼이 없는 페이퍼는 상상하기 싫을 정도다. 이건 팁인데, 나같은 경우 설정에서 ‘좌우 버튼 설정’을 양쪽 모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도록 했다. 이러면 어느 쪽 손에 쥐고 있어도 가까운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다음장을 볼 수 있다. 

10월 10일(토) 가을비 주륵주륵 : 비 오는 토요일엔 만화를 봅니다

아무것도 할 게 없는 비 오는 주말이다.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낄낄거릴 수 있는 만화를 보기로 한다. 리디북스에는 만화책 대여 서비스가 있다. 가격도 300원에서 900원 사이로 저렴하고, 일주일이란 기간도 다 읽기에 충분하다. 가볍게 킬링타임용으로 보는 만화는 이 서비스를 자주 이용한다. 비 오늘 주말 전기장판 위에 배 깔고 보는 만화책이란 정말 꿀맛이다. 이번 주말을 책임진 만화책은 의룡과 명탐정 코난, 34세 무직씨. 모두 각각의 매력이 묻어나는 수작이다. 행복한 히키코모리 여러분에게 강력 추천!

이제 단점을 이야기해 볼까. 느린 속도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잔상은 아직도 적응 중이다. 전자잉크는 잔상을 없애기 위해 주기적으로 리프레시를 해줘야 한다. 기본은 5페이지마다 리프레시가 되도록 설정이 되어있는데 설정을 통해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뒤 페이지에 글씨가 비치는 듯한 잔상이 신경 쓰여서 이 텀을 조금 줄여볼까도 했는데 글자를 못 읽을 정도까지는 아니라 그냥 두기로 했다. 게다가 잔상이 신경 쓰이면 언제라도 화면을 두 번 타닥 누르면 리프레시가 가능하다.

배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빠르게 닳는다. 완충 후 3일을 격렬하게 사용했더니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경고등이 뜨더라. 물론 내가 너무 많이 쓴 탓도 있지만, 기대 이하의 체력이다. 일주일 정도 긴 여행을 떠날 때 충전 케이블을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될 정도는 아니란 소리다. 알고 보니 페이퍼는 ‘잠자기 상태’에서도 계속 와이파이를 잡기 때문에 배터리 소모량이 많다고 한다. 책을 다운로드할 때 말고는 와이파이를 꺼두는 것이 좋겠다.

10월 12일(월) 맑음: 페이퍼와 함께한 일주일

요즘은 밤마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됐다. 아침 출근 풍경도 다르지 않다. 이어폰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가방에서 페이퍼를 꺼내든다. 페이퍼는 그런 매력이 있다. 자꾸 꺼내서 조금이라도 책을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출근길의 만원 버스에서도 조금의 틈만 생기면 꺼내볼 수 있다. 가볍고 작으니까. 게다가 자랑하고 싶어진다. 나는 이 구하기 힘든 페이퍼를 1차로 손에 넣은 승리자가 아니던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책은 종이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개인 취향이다. 일주일 정도 페이퍼와 함께 해보니 전자책 단말기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가볍고 편리하다. 손이 작은 나는 두꺼운 책을 오래 읽으면, 손이 아릴 때도 있다. 500페이지 이상의 묵직한 책은 한 손으로 읽기도 어렵고, 페이지를 넘기는 것도 번거롭다. 하지만 전자책은 그 책이 얼마나 두꺼운지, 그리고 내가 어느 부분을 읽고 있는지가 독서 환경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떤 책이든 얇은 시집 한 권 정도 무게의 단말기를 꺼내 손에 쥐고 버튼을 눌러 읽으면 된다.

내 페이퍼엔 현재 80권 정도의 책이 들어 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새로 산 몇 권의 책 중에 내키는 것을 골라 읽는다. 뷔페식 독서랄까? 나처럼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사람에게 이보다 편리한 독서 수단은 없을 것. 요즘은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가장 먼저 전자책이 나왔는지를 확인한다.

아, 내가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이다. 책을 읽다 놓칠 뻔 했다. 화면의 오른쪽 모서리를 터치해 책갈피를 만들고 위쪽의 버튼을 눌러 ‘잠자기’ 버튼을 누른 후 버스에서 내린다. 책 읽는 여자 에디터 L의 전자책 입문기는 여기까지.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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