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테크붐이 식고 있는 것일까.
미국 정보통신(IT) 기업들의 기업공개(IPO)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투자자들이 비상장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딜로직의 자료를 인용해 올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 IT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그쳤다고 전했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딜로직은 IT 기업의 상장이 이처럼 저조한 배경은 기업과 투자자들 사이에 기업 밸류에이션에 대한 평가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업이 상장을 하더라도 기대만큼의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리하게 IPO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클라우드 스토리지 업체인 드롭박스는 올해 초 펀딩을 성공적으로 마쳐 기업가치가 4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오른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최근 업계 전문가들은 드롭박스가 100억 달러에 IPO를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블랙록은 드롭박스의 주당 밸류에이션을 24% 하향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비상장 IT 기업에 대한 높은 밸류에이션에 의구심을 품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업체인 벤치마크의 파트너인 빌 걸리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자금조달을 반복하는 사이에 기업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스타트업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WSJ는 실제로 지역 서비스업의 마케팅 등을 지원하는 웹 사이트 운영업체인 섬택(Thumbtack), 중고차 판매사이트를 운영하는 비피(Beepi),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인 제트닷컴(Jet.com) 등은 모두 자사에 대한 높은 밸류에이션을 축소해야 했다고 예를 들었다.
비상장 기업에 투자하는 야누스캐피털 ‘글로벌 테크놀로지 스트래티지 펀드’의 브래드 슬링어렌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IPO 시장은 고성장 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을 하향 조정하고 있으며, 우리는 비상장 시장도 그에 따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WSJ는 이에 대해, “올여름 기업가치를 1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하고 IPO를 발표한 기업이 10여곳 이상에 달한 달도 있었지만 그러한 추세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IPO 시장에서 IT 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을 낮추는 건 최근 상장된 IT 기업의 주가가 곤두박질친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이후 벤처캐피털의 지원으로 IPO를 실시한 49개 IT 기업 중 적어도 11개는 기업공개 때의 가격보다 낮은 주가를 형성하고 있다. 모바일 소프트웨어 회사인 모바일아이언(MobileIron)과 케어닷컴(Care.com), 에이피지(Apigee), 에어로하이브(Aerohive) 등의 주가는 40~60% 가량 떨어졌다.
WSJ는 “실리콘밸리의 최고 유망한 스타트업이라도 투자자 사이에선 훨씬 낮게 평가되고 있다”면서 “IT 기업의 IPO가 부진하면 이들 기업의 직원 채용이 어려워지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