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프로(GoPro)의 화성 수난기, 영화 마션

입력 2015-10-2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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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 중 한 구절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마션(Martian)을 보는 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건 ‘영화 마션을 만든 건 팔할이 고프로다.’라는 생각뿐이었다.

마션은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이 앤디 위어(Andy Weir)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1인칭 서술로만 이루어진 소설을 우주 비행사 마크 와트니의 관점으로 풀어가는 것이었다고. 영화 제작 초기엔 고프로를 우주복의 일부 장치인 소품으로만 생각했다는 내용을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감독은 주인공이 가는 곳 어디든 고프로를 두어 마치 블랙박스처럼 모든 것을 촬영했다. 마치 톰 행크스(Tom Hanks)가 출연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의 주인공 척 놀란드(Chuck Noland)가 사막섬에서 ‘윌슨(Wilson)’이라는 배구공을 친구로 가진 것처럼.

사실 고프로가 영화판으로 뛰어든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9년 말부터 HD 화질을 지원하면서 프리뷰 용도가 아닌 본격적인 영상 촬영용 기기로 사용돼왔다.

그 이후로 할리우드를 비롯한 영화 제작 현장에서 고프로를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설치 제약이 없을 만큼 작고 앵글의 제한이 없다는 장점이 크게 부각됐기 때문이다.   

고프로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 홀로 남고나서 부터다. 죽다 살아난 주인공은 다음날부터 화성 기지안에서 영상 일기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등장하는 앵글이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고프로 영상이다.

이후 주인공의 우주복에 달린 수트캠, 기지 곳곳의 CCTV로 보이는 대부분의 영상은 대부분 고프로로 촬영된 것. 심지어 화성에서 사용하던 탐사차량인 로버의 실내를 비추던 장면과 식당을 개조한 감자밭에선 주인공을 찍고 있는 고프로가 직접 등장한다.

나사에서 보급선을 만들던 직원들이 16진법으로 주인공과 대화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장면은 타임랩스같은 느낌으로 전개될 정도. 이쯤이면 고프로 홍보영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마션이 상업 영화를 대표하는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만큼 PPL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영화 속에서 고프로만 등장하는 건 아니란 얘기다. 화성이라는 미지의 공간을 배경으로 촬영했지만 PPL은 고프로 말고도 영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이 자가용처럼 타고 다니던 탐사선을 로버(ROVER)라고 부르더니 나사 국장이 중국과 협의를 위해 타고 간 차가 바로 레인지로버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구로 귀환도중 동료의 생존소식을 전해 들은 대원들은 곧장 유턴해 화성으로 향한다. 탐험 대장이 남편과 화상통화를 할때 선물을 구했다면서 아바(ABBA)의 레코드판을 비춘다. OST에도 워털루(Waterloo)란 곡이 흘러나온다. 솔직히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ABBA의 판권을 보유한 곳은 마션의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의 라이벌, 유니버셜 스튜디오다.

나사 직원끼리 하는 화상통화 화면 우측 상단엔 시스코(CISCO) 로고를 계속 비춘다. 사실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시스코는 통신설비 회사지 방송사가 아니니까.

주인공이 화상을 떠날 때는 무슨 의미인지 한 번도 안 보이던 손목시계가 보인다. 바로 해밀턴이다. 순간 인터스텔라 오마주라는 생각이 든다.

귀환선인 헤르메스호 안에선 미국의 상징인 나이키(NIKE)를 입고 있는 화성탐사대도 보인다. 처음엔 모두 나사의 보급품을 입고 있었는 데, 장소가 바뀌면서 몇명이 나이키를 입고 나오더라. 그 중에서 눈에 띄는 제품은 나이키 에어로로프트 베스트였다. 현재 한국 매장 쇼윈도에도 걸려있는 모델이다.

몇몇 장면에서는 과학과는 동떨어진 NG 장면이 있었지만 이미 충분히 스포일러를 남긴 것 같은 미안한 마음에 말을 아끼겠다.

PPL과는 상관없지만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추억의 팝송은 1970년대를 풍미하던 곡이다. 그 시대에 대한 추억이 없더라도 마지막 엔딩크레딧에 나오는 곡은 한 번쯤 들어본 멜로디. 우리나라는 가수 진주가 번안해서 불렀던 ‘난 괜찮아’다. 영어 원제는 ‘I will survive’ 제목처럼 주인공은 그렇게 화성에서 홀로 살아남았다.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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