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호의 중구난방] 석유화학 구조조정, 업계에 맡겨라

입력 2015-10-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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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호 산업2부 차장

중국발 공급 과잉에 어려움을 겪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 구조조정 광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사실 석유화학 업계에 대한 구조조정 이야기는 수년 전부터 있었다. 석유화학 산업이 지닌 한계 때문이다. 석유화학 산업은 범용제품 비중이 큰 데다 수출 의존도가 높아 해외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업체 수가 많아 수익성이 낮고 단위공장 및 기업 별 생산능력이 떨어진다.

이에 석유화학 업계 또한 지속적인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변화해 왔다. 유사 업체 간 기업결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높이고 효율성을 향상시켜 경쟁력과 수익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석유화학 업계 역시 뜻을 같이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시장논리에 따라야 할 구조조정을 정부가 주도해 진행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윤상직 산업통상부 장관은 앞서 지난달 2일 “석유화학 업종은 그냥 두면 공멸할 수밖에 없고 선제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구조조정 방향은 전문화와 대형화로 구체적 방안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시장 자율에 맡기고 유도만 할 뿐이라고 말하지만, 석유화학 업계는 이전부터 정부가 늘 해온 것처럼 혹여 직접 칼을 빼들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정부와 업계 사이에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제조기업들이 그러하다. PTA는 합성섬유와 페트병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원료로, 중국발 공급 과잉에 제품 가격이 급락해 최근 몇 년 사이에 어려움이 급증했다.

중국은 지난 2012년에만 1200만톤 규모의 PTA 증설에 뛰어들면서 국내뿐 아니라 일본의 PTA 업체까지 수익성 악화가 심화하고 있다. 2011년 653만톤에 달하던 중국의 PTA 수입량은 지난해 116만톤으로 82% 급감했고 수입 의존도도 같은 기간 27%에서 3%로 추락했다. 이에 PTA 전문기업인 한화종합화학과 삼남석유화학은 올해 상반기에 각각 232억원, 15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석유화학 업계의 염려는 한국석유화학협회장을 맡은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의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허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의 대규모 증설에 따라 PTA 시장의 업황이 악화한 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총론적으로 맞다”면서 “업체 별 강·약점이 다른 만큼 관련 사업 구조조정의 주체와 방법,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윤상직 장관에게 정부는 지원자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전달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계는 지금처럼 여건이 어려웠던 과거에도 수차례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했다. 한화케미칼과 대림산업이 나프타 크래커를 통합해 탄생한 여천NCC와 한화종합화학(옛 삼성종합화학)이 프랑스 토탈과 합작해 전환한 한화토탈이 그러하다.

정부의 개입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특정 대기업에 특혜를 몰아주거나 대규모 실업 사태를 촉발할 수 있다. 아울러 구조조정이 속도전 양상으로 흘러가면 허 사장의 이야기처럼 업계의 상황과 의견은 묵살된 채 일방적인 칼 휘두르기에 그칠 수 있다.

“말이 좋아 자율이었지 강제가 아닌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면 구조조정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귀담아 들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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