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자발적 구조조정이 답이다

입력 2015-11-02 11:07 수정 2015-11-0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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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산업2부장

학교 다닐 때 죽고 못 살던 친구가 하나 있다. 한동네에서 태어나 유치원·초등학교·고교까지 함께 다니며 세월과 인연을 켜켜이 함께 쌓아온 그런 친구다. 그러다 보니 필자가 그 친구의 인생사에 정통한 것도 당연한 노릇. 친구는 나이 칠십이 넘어 나중에 자기 인생의 구구절절 스토리를 책으로 남기고 싶은데, 당연히 작가는 필자라고 말할 정도다. 농반진반의 얘기지만 이 친구 책 제목도 정해놨다. ‘김00… 실업자에서 실업가로’.

그가 미리 만들어 놓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는 무척이나 굴곡진 인생을 살아냈다. 그리고 그에게 굴곡의 인생을 듬뿍 선사한 것은 다름 아닌 사업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명문대 출신이다. 그리고 그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엔 요즘같이 살벌하디 살벌한 취업전쟁이 없던 때여서 명문대 출신이라는 레테르만 있으면 기업에 들어가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대뜸 선택한 것은 적자생존의 정글인 사업이었다. 더구나 그의 아버지는 소방관이라 1000원 한 장 보태줄 입장도 아니었다. 친구들은 두손 두발 총동원해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불알친구로서 의무감에 충만했던 필자는 “네가 사업하면 절교”라며 뜯어말렸다.

하지만 친구들의 쓴소리도 마다하고 그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것도 오롯이 대출에만 의존해서. 더 가관인 것은 직원이 수십 명에다 사무실은 비싸디 비싼 명동이었다는 사실이다. 아이템도 남들 잘된다는 건 이것저것 다 꿰다 붙여 족히 10가지는 됐다. 이쯤 되면 결말은 뻔하다. 망하는 것이다. 결국, 친구는 자산의 수백 배의 빚에 쪼들리다 부도를 냈다.

사업에 망한 충격에 그는 술로 생명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가히 온순 그 자체였던 사람이 180도 돌변해 주위 사람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했다. 친구들은 그가 저러다 죽거니, 폭력으로 전과2범(그는 이미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한 바 있다)이 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그는 갑자기 어느 날 술도 끊고, 온순한 성격도 되찾은 채 친구들 앞에 나타났다. 그의 아버지가 몇 날 며칠 단식농성을 감행해 아들의 죽은 정신을 일깨웠다고 한다.

그러고 몇 년 후 그는 사업을 시작했다. 자본금은 빌린 돈이 아니라 막노동하며 한푼 두푼 마련한 돈이었고, 직원은 달랑 두 명, 사무실은 집안의 방 한 칸이었다. 아이템 역시 딱 두 가지였다. 회사는 시작하자마자 경이적 매출을 기록하며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지만, 대출도, 직원 수도, 사무실 위치도, 아이템도 그대로다. 이런 이유로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저세상으로 직행한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그의 회사는 꿋꿋이 살아남았다.

죽을 날 받아놓은 좀비기업이 경기 부진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기업부채에 대한 사전적·적극적 관리를 위해 정부 내 기업구조조정협의체를 마련했다. 협의체에는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금융감독원·국책은행 등 관계기관 차관과 부기관장 급이 참여하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은 조선·해운·건설·철강·유화 5개 업종이다. 이들 업종은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불황이 계속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대상으로 거론되는 회사의 경영진은 자기 회사가 죽음의 리스트에 들어가지 않게 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노조는 노조대로 회사정리에 따른 집단해고나 실적 부진에 의한 감원이 시행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벌써 목에 핏대를 잔뜩 세우고 있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피하려고만 하는 경영진이나 무조건 반대만 하는 노조 모두 문제가 많다. 구조조정은 한국경제가 기사회생하는 필수 불가결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회사가 사라질 수도, 직원들이 직장에서 나가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한국이 또다시 IMF사태 같은 위기를 맞는다면 사라질 회사와 잘릴 근로자의 숫자는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이제 필자의 친구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는 첫 번째 회사의 쓰디 쓴 교훈을 뼛속 꾹꾹 아로새기면서 아이템과 직원 수, 사무실 비용, 대출 규모를 화끈하게 줄였다. 바로 자발적·대대적 구조조정이다. 덕분에 그는 금융위기의 파고를 너끈히 넘을 수 있었다. 재계도 정부에 떠밀려 찔끔 시늉만 할 게 아니라 필자 친구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서, 화끈하게 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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