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단절과 불균형, 좋은 기업이 필요하다

입력 2015-11-04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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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평행으로 달리는 ‘단절 사회’. 2013년 ‘이코노미스트’가 한국에 관한 특집기사에 내건 타이틀이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것 말고도, 우리 사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가계, 남성과 여성,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많은 곳에서 단절과 갈등을 안고 있는 단절 사회이고 불균형 사회다.

우리 사회가 불균형 사회, 단절 사회가 된 원인은 대부분 경제에서 기인한다. 조세재정연구원에 의하면(2012년 4월),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상위 1%의 소득이 OECD 주요 19개국 평균은 9.7%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16.6%에 이른다. 우리보다 부의 쏠림이 심한 나라는 미국(17.7%)뿐이다.

불균형은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고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는 “시장의 불균형은 역동성, 효율성, 그리고 생산성을 마비시키고, 파멸적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여 결국 사회 전체를 침몰시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불균형 상태를 균형으로 되돌려 놓으려면 정부의 노력과 함께 기업도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좋은 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기업의 필요조건은 무엇일까?

첫째, 이윤 극대화를 넘어선 사명과 비전을 추구한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 극대화에 있다. 그런데 IMF 직전 우리 대기업들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매출 극대화를 경영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 투자할수록 손해가 나 IMF 구제금융을 초래한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최우선 순위로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이윤 극대화가 기업 목적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100년 이상 된 영속기업들의 특징은 이윤을 넘어선 사명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 돈을 버는 것은 이들 기업의 여러 목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좋은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돈 버는 것 이상의 가치와 목적의식에 의해 경영되는 기업이다.

두 번째 조건은 법과 회계 기준에 충실한 준법경영을 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입법 취지와 사회 통념에 맞는 윤리경영을 해야 한다. 법은 기업 상호간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의 산물이다. 따라서 기업이 법을 준수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자본주의를 지키는 기본 토양이다. 기업은 또 준법경영에 머물지 말고 윤리경영을 실천해야 한다. 최근 정치 중심의 사회체제가 경제가 정치와 사회, 문화에 영향을 주는 사회로 전환하고 있다. 기업이 전통적 사회의 영향력을 넘어, 국가를 공동으로 운영해 가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한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조건은 앞의 두 가지 조건을 갖춘 기업으로서 동반성장을 실천하는 기업이다. 좋은 기업은 사회 속에서 건전한 기업시민(Good Corporate Citizen)의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단순히 자본이 남을 때 나눠 주는, ‘남는 파이 주기’ 식의 활동이었다면, 이제는 기업이 사업 목표를 세우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공익과 기업 이익의 균형을 위해 ‘파이를 키우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파이를 키우는 방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경영자와 노동자 등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들이 협력해 함께 발전하는 동반성장이다. 대기업만의 나 홀로 성장은 경제의 불균형과 단절을 초래해 궁극적으로 시장의 붕괴를 가져온다.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회공동체가 흔들리고 시장이 무너지는 마당에 매출과 이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역사는 사회 구성원이 희망을 갖지 못할 때, 사회혼란이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개인의 성실한 노력만으로도 사회계층 이동이 가능할 때 절망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회는 안정을 유지한다. 절망의 단절사회를 희망의 동반성장 사회로 만들어, 다음 세대의 생활터전으로 가꾸는 것은 이 시대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더 늦기 전에 힘을 모아야 한다. 자본의 탐욕은 스스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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